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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 데이비드 소라 Jan 26. 2022

제로 웨이스트 80%만 해볼게요.

제로 웨이스트 도전하고 실패하며 쓰는 글들 

프롤로그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니던 대학교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첫 달, 모든 것이 좋았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만남은 호기심과 사교성을 극대화시켰다. 역시 나는 미국 체질이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유학생들이 초기에 겪는 ‘허니문 기간의 증상으로 정확히 두 달 뒤, 나는 다음 단계인 ‘좌절기'에 여지없이 돌입했다.  콩깍지가 벗겨진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좋아 보였던 것이 갑자기 싫어지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일상 속 언어적 장벽은 어마무시만 향수병과 고국에 대한 애타는 마음만을 들끓게 했다. 새로운 삶, 새로운 도전, 새로운 방식 다 싫어. 나 예전으로 돌아갈래!!!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겠다고 다짐하며 들었던 감정들이 꼭 그때와 같다. 다 그만두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나는 잘할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함, 왜 나는 이것밖에 하지 못하는가 라는 자괴감이 불쑥 들었다. 생활 속 버리려 지는 것(waste)들을 o(zero)로 만들어보는 삶을 지향해보자고 마음을 먹은 지 정확히 두 달 정도가 지난 뒤였다. (내 흥미의 유효기간은 최대 두 달이란 말인가.)


처음 한 달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집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배출의 주요 출처인 배달 음식도 단호하게 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집안 내 플라스틱 제품들을 모두 무 잘라내듯 사용 중단하고 친환경 대체 용품으로 어려움 없이 넘어갈 줄 알았다. 평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일삼던 옷 쇼핑과 인테리어 소품 쇼핑도 단호하게 끊어내고, 필요한 물건들만 사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더랬다. 


일회적 다짐이 누적된 습관을 이겨낼 리 없다. 업무 위주로 돌아가는 내 일상에서 '간편함'과 '신속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규율이었다. 밥을 직접 지어먹는 횟수보다 즉석밥을 돌리는 날이 많았고, 반찬을 직접 해 먹기보다는 동네가게에서 시켜먹었다. 직접 소매점에 가서 필수품을 사기보다는 온라인 쇼핑으로 필요한 물품을 조달했다. 돈을 지불하면 누군가가 나 대신 반찬을 만들어주고 필요한 샴푸와 세재들을 배송해 준다. 그렇게 아낀 시간에 또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그런 삶이었다. 이렇게 일주일을 살아내면 우리 집 외 부엌은 택배 박스와 스티로폼으로 가득 찬다. 


그럼 택배 박스에 붙어있는 송장 스티커들과 노란색 테이프들을 뜯어내면서도, 반찬 담은 투명 플라스틱 용기를 세척하면서도, 즉석밥 용기에 밥풀을 떼어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안 되겠는데? 제로 웨이스트 못하겠는데?'


그렇게 잠시 우울해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만 두면 개선의 가능성이 아예 사라져 버릴 것이고, 서툴고 잘 안되더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보자!'  (나는 긍정적인 사고 회로를 가진 내가 참 좋다.)

 

게다가 나는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잠깐 다른 얘기지만,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자영업자가 된 이유 중 하나도 이런 나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조직에서는 100%를 넘어 120%의 역량을 보여주어야 인정받을 때가 많은데(결과는 번아웃), 내 사업장에서는 내 역량의 80%만 보여줘도 굉장히 흡족하고, 무엇보다 뒤통수가 덜 따갑다. (물론 모든 것이 내 결정이고, 내 책임이라는 것은 큰 부담이다.)


학창 시절에도 평균 80점만 넘으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밑을 겉돌 때도 많았다.) 100을 채우겠다는 사명감과 부담감은 나를 경직시키고, 70만 하자고 하면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한다. 80이라는 숫자는 참 부담 없이 도전하기에 좋은 숫자다. 제로 웨이스트도 너무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지 말고, 80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그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리즈는 그러한 자각을 하려는 노력과 서툰 실천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제로 웨이스트 도전기 겸 실패기 겸 재도전기다. 내 생활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지구 생태계와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 터득해 나가는 중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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