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짧은 시간 동안 지구 한 장소를 빌려 사는 존재다.”
서울에서 6년째 자취를 하는 내 친구. 집을 깨끗하게 써서 집주인에게 사랑을 받는 세입자라고 했다. 집주인 아저씨가 집수리를 위해 간혹 들리는데 그때마다 매우 흡족해하며 '떨어진 인절미'를 집어 먹어도 될 정도라는 극찬의 표현도 아끼지 않으셨단다.
문득 집주인 아저씨의 신선한 표현력에 감탄했다. 인절미에 묻은 콩고물까지 주워 먹어도 될 만큼 바닥에 먼지가 없다는 걸 함축적으로 표현한 메타포!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요즘엔 벽에 못질을 하지 않아도 거울과 벽시계를 고정시킬 수 있는 강력한 스티커 제품이 나와 벽에 흠집을 내지 않는 게 수월했다고 했다.
아무리 신뢰를 받는 세입자라도 집주인의 눈치를 본다. 그래서 다들 월세-반전세-전세-자가의 코스를 밟아 내 집 마련을 꿈을 꾸었는데, 요즘 집값 보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집주인 눈밖에 나서 좋을 것이 없으며, 호감을 유지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는 건 자취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물론 하자보수를 요구할 때는 그 좋던 관계도 다소 서먹해진다고 했지만.
하지만 조금 다른 세입자도 있다. 기나긴 역사를 가진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류는 ‘초단기 세입자' 다. 그런데 이 세입자 보통이 아니다. 집주인과 이웃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 마치 지구의 땅과 하늘, 나무와 공기를 자기 것인 양 마음껏 사용한다. 산을 깎고, 나무를 베고, 하늘을 연기로 뒤덮고, 바다를 쓰레기로 채운다. 자신의 임차기간을 넘어서(자신의 수명도 넘어서) 존재하는 처리 불능의 플라스틱을 지구 구석구석에 흩뿌린다.
온실가스, 중금속 폐기물, 살충제와 같은 화학 물질들을 땅과 바다 곳곳에 보내 다른 세입자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에 빠트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세입자. 이들은 같은 지구에 사는 다른 세입자에게 큰 관심도 없다. 생물 진화사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종이면서 '지구' 라는 다세대 주택의 건물주인 냥 행세하니 다른 세대들은 환장할 노릇이다. 그 무관심과 오만함에 다른 세입자들은 혀를 내두르다 못해 건강을 잃고 터를 잃는다.
저 바다 아래층에 사는 붉은 바다거북이들도 인간이 배출한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해 먹었다가 탈이 났다. 저 위층에 장기 거주했던 북극곰도 이상기후로 생존마저 위협당하고 있다. 사냥터인 빙하가 줄면서 먹이를 찾기가 어려워진 거다. 그런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딱히 변화된 모습은 10년째 없는 것으로 안다. 뭐 이런 종이 다 있어?
미국의 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는 '토지는 건강하게 존속해야 하는 생명체'이며, 그 위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은 '인간과 진화의 역사를 함께한 친족이나 동료들'이라고 했다. 인간은 언제까지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외면할 것인가. 인간과 동식물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서열 관계를 뒤엎고, 인간의 지위만큼 식물과 동물의 종 또한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시각이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언제까지 우리 인간은 제멋대로 세입자로 지구를 맘껏 해치면서 살 수 있을까. 더 이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아니지 그렇게 살 수 없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눈치 빠른 몇 명은 알아챈 것 같다. 기후 변화는 이제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눈치 없고 둔한 나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느낄 정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