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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Oct 13. 2022

아이가 둘이면 독서할 수 있을까

이직 후 넉 달이 지났다. 바쁘게 일하고 싶어 택한 직장이었고 결정에 후회는 없다. 잡념이 끼어들 새 없는 상황은 내가 원한 것이다. 감사하며 다닌다.


최근 두 번의 연휴를 '겪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연휴는 재밌고 힘들다. 그날의 어젠다를 정하지 못하면 세 사람의 일상이 휘청인다. 오늘 뭐 하지? 어디 가지? 뭐 먹지? 남편과 매일 머리를 쥐어짰다.


제일 만만한 게 동네 공원과 놀이터인데, 비 오는 날은 이마저도 택할 수가 없다. 날씨가 온갖 변덕을 부린 날,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헌 책 수거함에서 책을 몇 권 주워왔다. 그중에 <데미안>도 있었다. 남편이 아직 <데미안>을 못 읽어봤다며 식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아이는 거실에서 혼자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랑 잘 못 논다. 못 놀아준다. 남편은 아이랑 잘 놀아준다. 아이도 아빠랑 잘 논다. 셋이 집에 있는 날이면 남편의 육아 의존도가 높아진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가 공놀이 상대로 원한 건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모처럼 책을 펼친 남편은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하나라서 그래. 둘이면 둘이서 놀 텐데. 그럼 책도 볼 수 있을 테고."


남편의 발언이 어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라면 장문의 댓글을 달았을 텐데. 평화로운 육아 모드를 깨고 싶지 않아 참았다. 그 순간 다짐했다. 내 마음속 댓글을 브런치에 써야지. (넉 달만에 브런치 업데이트하게 해 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아이가 둘이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이가 둘이면 더 많은 개인 시간 혹은 부부의 시간이 확보될까? 이게 무슨 강 건너 육아 구경하는 소리야!!! 아이를 둘 낳아주지 못한 나를 탓하는 것 같다는 피해망상과 더불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천진하고 바보 같단 생각마저 들었다(여보 미안).


아이가 둘인 상황을 재빠르게 시뮬레이션해봤다. 아이 둘이 거실에서 조용조용 사이좋게 놀까? 집은 더 난장판이고 둘은 장난감 가지고 싸우고 그거 말리느라 더 진이 빠질 거다. 둘 따라다니며 치워야 하고 둘 케어하느라 신경 두 배로 써야 하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생의 '변수'도 두 배가 될 거다. 둘인 게 나쁘단 건 아니고 여력이 되면 둘이 더 좋겠지만 하나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둘을 바라며 둘이면 무조건 좋을 거라 생각하는 남편의 천진함, <어차피 내 일 아님>식의 사고가 그 순간 매우 개탄스러웠다.


참지 못하고 한소리 했다. 당신 친구 00 씨는 애가 둘인데 집에서 책 읽느냐고. 남편의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00 이는 온라인 강의는 들어."


귀여운 남편. 온라인 강의, 독서, 운동, 이 모든 자기 계발은 애를 둘 낳아서 둘이 잘 노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애가 자는 시간, 출퇴근 시간, 다른 자투리 시간 아껴서 하는 건데. 새벽반이 되거나 야간조가 되어서 말이다. 아이랑 같이 있는 순간에 온라인 강의, 독서, 운동하려면 배우자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나요.  


육아하며 내 시간 확보하려면 애를 둘 낳을 생각을 할 게 아니라, 내 시간을 더 타이트하게 써야 하는 법이거늘. 남편에게 못한 말을 브런치에 쓰며 열이 올랐다가도 피식 웃는다. 사랑(은)하는 남편. 나와 생각이 다르지만 그 생각의 차이를 좁혀달라는 건 내 욕심이고 이뤄지지 않을 소망이다. 다른 생각을 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결혼이라 결혼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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