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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Mar 29. 2022

날 닮은 너

12월생 아이를 유치원 만 3세반에 보낸 지 한 달 째다. 늦은 개월 수여도 발달이 느린 편은 아니라 웬만큼 적응하겠지 했는데 너무 쉽게 생각했다. 아침마다 유치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키즈노트에 올려준 사진을 보고 덜컥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보니 또래 중에 우리 아이가 가장 작았다. 1,2월 생들과는 정말 차이가 컸다. 낮잠 없이 종일반까지 하느라 힘들어하다 하원 직전에 잠든다는 담임 선생님 말에 코끝이 찡했다. 낯선 커리큘럼을 버거워하는 것도 느껴졌다.


최근엔 종일반에 괴롭히는 친구가 있다고 해서 온 집안이 난리였다. 손이 떨리고 눈물이 솟구쳐 밤을 꼴딱 지새우고 유치원에 가서 자세히 알아보니 아이가 지어낸 스토리에 가까웠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유치원 가는 게 오죽 싫으면 상상과 현실을 합쳐 자기만의 방어기제를 만들어냈을까 싶어 걱정이 더 커졌다.


그런데 어쩌나.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걸. 4시 반까지는 기관에 있어야 나도 친정엄마도 할 일을 할 수 있다. 친정엄마의 워라벨은 육아의 절대적인 요소다. 4시 반까지는 엄마도 자유를 누리셔야 그 뒤의 모든 일과가 편해진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긴 나는 엄마의 컨디션이 아이의 컨디션보다 더 신경 쓰인다.


나도 안다. 아이가 느끼는 힘듦을. 정말 누구보다  안다. 생일이 2 말이라 빠른 생년으로 교육기관에 갔고 기관에서 생일이 가장 늦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학습 부진아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학년 초마다 보는 진단평가는 공포였다.  진단할 만큼 배운  없는데 학기  적응도   상태에서 다짜고짜 시험을 치니 결과는 암담했다. 빨간 소나기가 내리는 시험지를 들고 집에 왔다.


나는 교과 내용을 잘 이해 못 했다. 구구단도 늦게 외웠다. 시계를 볼 줄 몰라서 누가 시간을 물어보면 시계를 들이밀었다. 고무줄도 줄넘기도 공기도 다 늦게 익혀서 유행이 지난 뒤에 비로소 재미를 붙이곤 했었다. 리코더나 단소 같은 악기는 남들의 두 배, 세 배를 연습해야 남들만큼 할 수 있었다.


학습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 남들보다 뒤처졌던 경험은 마흔이 코앞인 나의 자아 한구석에 여전히 존재한다. 중학교 진학 후엔 학습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최초의 학습 결과치가 좋지 않았던 기억이 <학습>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날 잊은 건 아니겠지?" 하며 고개를 들었다. 남들보다 더 잘하는 부분이 있어도 그걸 낮게 인식하고 스스로 조바심이 나서 긴장과 불안을 만들어 낸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고 자책이 일상인 이유다.


이것만은 닮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12월생인 아이가 숙명처럼 나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경계심이 든다. 늦어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고, 힘들면 도중에 그만둬도 되니 한 번뿐인 인생 맘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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