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드라마] SBS 주연_송일국, 이종혁, 송지효
“‘강력반’이란 드라마 알아?”라고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모른다. ‘강력반을 안다고’ 말하는 한 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출연 배우의 팬이거나, 방송 관계자이거나, 나의 지인이거나. 2011년 3월 첫 방송한 KBS 드라마 ‘강력반’은 지금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 작품이다. 다시 말해 일은 힘든데 박봉이고 성격은 더러워지는 방송 바닥에 제 발로 기어들어 가도록 만든 작품.
고등학교가 문, 이과로 나뉘어 있던 시절, 나는 과학을 좋아하는 이과생이었다. 이 나이가 되면 연구원이 돼 하얀 가운을 입고 시험관을 들고 있을 것이라 늘 생각했지만 현실의 나는 컴퓨터 앞에서 매일 같이 글을 고쳐 쓰고, 끊이지 않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다. 인생의 방향이 틀어진 건 고등학교 졸업 이후였다. 가장 자신 있던 과탐을 밀려 쓰고, 교차지원이라도 성공해 대학생이 된 나는 기획서를 쓰고, 카메라를 들고뛰어다니며, 머리도 못 감은채 밤을 새우며 편집실 의자에 엎드려 잤다.
그러던 대학시절 봤던 여러 드라마 중에 하나인 ‘강력반’.
‘강력반’의 로그라인은 짧고 굵다. ‘강남 경찰서 강력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수사 드라마’. 요즘 드라마라면 로그라인이 성의 없다고 난리 날 테지만, 그땐 그저 너무나 뻔한 드라마 로그라인 중 하나였다. 각 캐릭터에게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해결해가는 과정일 테고, 가끔씩 카메오가 출연해 살인도 하고, 생계형 범죄도 저지르고 그러겠지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첫 방송을 본방 사수했고, 고작 1-2회를 보고 16회까지 본방 사수할 것을 다짐했다. 정말 지극히 뻔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공영 방송 수신료를 타고 내 마음에 안착했다. 단 1-2회 만에.
범죄 앞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아 쳐 넣는 형사와 어려운 취업 문턱을 겨우 넘은 게 인터넷 매체 기자일지라도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기자. 냉혈과 열혈의 만남, 뻔할 수 있는 스토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챙겨 봤던 이유는 ‘아빠의 사랑’ 때문이었다. 송일국이 연기한 박세혁 형사가 냉혈한으로 변한 것은 딸의 죽음 이 후다. 범인 검거 과정에서 딸이 죽는 사고를 겪은 세혁이 열혈기자 민주를 만나며 딸의 죽음에 의심을 품고 쫓게 된다.
드라마 소재로 모성애는 많이 봤지만 부성애는 오랜만이라 신선해서였을까. 아니면 생애 첫 자취로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일까. 딸의 사고를 재수사하기에는 너무 작은 아니 어쩌면 증거가 될 수도 있는 희박한 정보를 쫓기 시작하는 박세혁을 보며 맹목적인 아빠의 사랑을 느꼈다. 박세혁이 죽은 딸을 향한 마음이 너무 애절해서 ‘맞다, 엄마 못지않게 나를 사랑하지만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 그 사람들을 바로 아빠라 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다 내어주는 게 부모였지.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계셨지’.
생각해보면 2011년의 송일국은 대한민국만세를 낳기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향한 사랑, 자식을 잃을 슬픔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싶다. 캐릭터 해석을 잘했고, 잘 녹아들도록 연기한 거지. 역시 연기의 대모 중에 한 사람인 김을동의 아들인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연기의 감정들이 잘 쌓아온 덕분에 대한민국만세가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던 게 아닌가 싶다.
부모님의 사랑을 드라마를 통해 느낀 덕분에 드라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드라마는 그냥 재미와 휴식을 위한 콘텐츠라 여겼는데 스토리를 통해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그 메시지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나도 이런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콘텐츠들과 함께 하고 싶어졌다. 아마 나는 이때부터 드라마 속 캐릭터 덕후가 됐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