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울어 봤나요?

대출받을 수 없는 예비 부부

by Melody

청첩장 모임을 시작했다. 각자의 인생을 바쁘게 살다가도 나의 결혼을 위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벌써 아이 둘의 엄마들도 있고 이제 신혼 생활을 즐기면서 결혼 전도사로 활동하는 친구들도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라이프를 친구를 즐기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서로 다른 환경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 가장 걱정스럽지만 조심스럽게 묻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집은 했어? 그래서 신혼집은 어디야?"


처음에는 구하고 있다며 즐겁게 말할 수 있었다. 한창 남자친구와 임장을 다니며 이 동네의 주거와 상권은 어떤지 논의할 때는 굉장히 어른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원하는 것의 기준을 세워 집을 보러 다니며 집이 마음에 들더라도 집주인과 부동산 앞에서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척 연기를 하며 남의 집 이방 저 방 문을 다녔던 우리는 진짜 결혼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9월에 결혼해서 6월부터 집을 보러 다녔는데, 그렇게 즐겁게 임장을 다니던 것도 잠깐. 바람 잘날 없는 대한민국의 새 정부는 6월 27일 새로운 대출 규제를 발표했다. 그리고 한시적 허용 없이 6월 28일부터 새로운 대출 규제를 때려 박았다.


집을 구하며 괜찮은 동네의 구축 아파트 가격이 좋다면 매매를 해볼까라고 생각하던 우리의 희망회로는 중단됐다. 그렇게 전세 대출로 눈을 돌렸는데, 대책 없는 정부는 신혼부부들이 전세로 비빌 수 있는 디딤돌 전세 대출 역시 규제를 걸며 70%로 금액은 다운시켰다. 정말적인 상황에서도 피할 구멍은 어디 하나는 있다는 생각에 서울시 신혼부부 전세 대출을 급히 알아봤다. 지자체 전체 대출이라 건드리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세금의 90%까지 나오는 서울시 신혼부부 전세 대출은 최대 3억으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거나, 결혼 후 서울에 거주할 신혼부부들이 받을 수 있는 대출 프로그램. 우리는 지난주 임장에서 본 3억 9천의 강서구 구축 아파트를 대출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러 첫 번째 은행을 방문했다. 집에 대한 컨디션에 대해 별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은행 직원은 우리의 대출을 말렸다. 집주인이 검은 머리 외국이라서...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이지만 캐나다 국적인 사람의 소유였다. 강서구 3억 9천 아파트. 1층이지만 필로티 구조로 높은 1층에 집 내부도 일부 수리를 해준다는 집. 역에서도 그렇게 멀지 않고 조용한 주거 동네. 괜찮은 조건들이라 생각해서 은행을 갔던 건데... 집주인의 형님이 위임장을 받아 진행하는 집이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의 시작처럼 보이는 대리인의 위임장 계약이라는 점과 외국인이 집주인이면 대출이 더 나올 수 있는 금액도 줄어들 것이라고 안내해 줬다. 아차, 싶었다. 그렇지 아무리 지금 세입자가 잘 살고 있다고 한들, 부동산에서 이 집을 여러 번 계약했다고 한들 사람일 어떤지 모르는 건데... 작은 이모뻘 되는 직원분이 아무것도 모르고 희망 회로 돌리고 있는 신혼부부를 걱정해 주는 진심이 전해졌던 것 같다.


사회생활 12년 차의 직장인은 희망 회로 하나쯤 깨졌다고 울지는 않는다. 희망 회로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눈물샘이 개방된다. 우리의 문제는 단순히 외국인이라 대출이 많이 나올 것 같은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소득 없음'이 발목을 잡았다. '현재 소득'이 없기 때문에 대출금이 최대 3억보다 많이 낮을 거란 통보를 받았다. 지자체 지원금이라 소득에 따른 대출금이 안 나올 거란 걱정보다 이자율이 낮아서 다행일 거라고 생각만 했던 희망회로가 무너졌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놓치고 있었던 거지. 못 벌고 있으면 안 빌려 준다는 걸. 유치원에 입학을 하고 나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회사까지 단 1년도 사회 구성원으로 소속이 되지 않은 적이 없다. 지난해 9시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회사 이슈를 담당하며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고 뇌에 문제가 생겨 퇴사를 했고 난생처음으로 무소속으로 요양 생활을 한 지 10개월. 폭염으로 39도가 웃돌고 있지만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려는 우리의 세상은 너무 추웠다. 12년이란 생활이 아깝지 않을 만큼 열심히 일했고 돈도 잘 모아 왔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열심히 산만큼 세상도 열심히 바뀌고 있었다. 더 높이 더 멀리. 어찌 됐든 다시 일할 건데, 지금 잠시 뿐인데, 돈 빌려 주시면 막노동이라도 해서 갚을 만큼 저 책임감 있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12년의 시간을 은행에서는 증명할 길이 없었다. 간절한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그저 "더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말 뿐이었다.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삶을 증명하는 일을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상황과 방법으로 삶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 드린다. 누구는 돈으로 누구는 취업으로 나는 단지 결혼으로 마주했을 뿐이다. 사람마다 방식도 기준도 다르지만 국가와 은행이 정해 놓은 기준 '현재소득' 앞에서는 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 된다. 증명할 게 할 수 있다고 믿어 달라는 외침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무력감. 방법이 없냐는 말을 끝내지도 못한 채 목이 메었고 "없다"라는 말에 펑펑 울 것 같아 은행을 도망치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행을 나오자마자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39도에 날씨에 걸어 다녀서 줄줄 흐른 땀보다 더 많은 눈물이 빠르게 흘러내렸다. 기어코 소리도 참지 못하며


길거리에서 실연당한 사람처럼 엉엉 울면서 집까지 걸리는 8분의 거리를 걸어갔다. 마실을 나온 할머니들이 괜찮냐며 실연당했냐는 질문에 "아니요. 괜찮아요. 저 결혼해요"라고 꼬박꼬박 대답하며 펑펑 울었다. 불행 중 다행은 양산 덕분에 울음소리만 듣고 말을 건 할머니들. 내 얼굴을 못 봤을 거다. 그저 결혼해서 기쁜 사람으로 알았을 것 같다. 그렇게 기쁘지만 기쁘지 못한 결혼을 나는 오늘도 준비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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