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을 전할 때 받게 되는 의외의 마음
결혼 준비를 하는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다. 그래도 대부분의 일은 남자친구와 나 사이의 일이라 서로 치열한 논의가 큰 소리 나는 언성과 조금 삐진 마음으로 해결이 된다. 부모님이 연결돼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감당학 정리할 몫이다. 그런데 우리의 범주 밖의 일이 종종 나타나는데 그중에 하나는 청첩장 모임이다. 누구까지 만나서 밥을 사느냐, 어디에서 사느냐, 얼마까지 쓰느냐, 모바일을 줘야 하나, 결혼을 알려야 하나...... 정말 끝도 없는 고민이 시작된다. 청첩장 모임을 고민하다 보면 수많은 사공이 나타난다. 어떤 사공은 그냥 다 주고 욕먹는 게 낫다. 어떤 사공은 어차피 한 번은 정리되는 인간관계다 그냥 안 주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어떻게 된 건지 결혼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각자의 의견으로 한 마디씩 거든다. 아마 이런 말은 결혼식 일주일 전 하객 명단을 작성할 때까지도 듣고 있지 않을까.
특히 나같이 일을 그만둔 사람이면 더욱 고민이 된다. 12년을 일하면서 한 번도 직장이 없이 결혼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사실 계속 동종 업계에서 일을 하며 얼굴을 마주하면 고민 없이 다 주면 된다. 하지만 업계를 떠나서 쉬고 있는지 10개월, 다시 동종 업계로 돌아갈지 말지도 모르겠는 사실은 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시간을 보내고 있다. 4개의 엔터테인먼트사를 거치며 일반 회사에서 말하는 외부 협력사로 수많은 홍보사와 방송사, 수도 없이 많은 언론 매체 기자들과 관계를 다지며 일한 12년. 예전 직장 동료는 있지만 현재 나에게 직장동료는 없다.
뭐 하다 못해 직장동료만 그렇겠는가. 중, 고, 대학교 시절 친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면 절친.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그 당시 친했던 친구들 사이 첫 결혼이다 보니 축하하는 마음으로 브라이덜 샤워도 해주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렇게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엄마가 됐고, 육아에 치여 점점 멀어져 이제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연락하면 아직까지 친구. 언제 만났는지도 기억 안 나지만 여전히 인스타그램이 이어주는 친구로 서로의 하트만 누르는 친구보다는 아는 사람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여럿이다. 역시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좁아지고 깊어지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줘야 할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꼭 있다. 꼭 줘야 하는 친구들은 제쳐두고, 청첩장을 받는 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청첩장을 핑계로 밥 한 번 먹자고, 차 한잔 마시자고 약속을 잡을 때면 왠지 모르게 설렌다. 밥을 사려고 만나는 거지만 결국 청첩장이라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종이 한 장을 지어주게 되니까 마음 한편에는 무서움도 있다. 제발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간절함도 있다. 내가 일방적으로 주고 싶은 관계라서 사실 결혼식에 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잘 지내는구나 밥 한 번 먹으며 안부를 확인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는 사이가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를 나간다.
내가 즐겁기 위해 나간 그 자리에서 가끔은 의외의 마음을 받아 놀란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이들을 보면 그저 반가워서 손을 흔드는데 그들의 손에는 뭐가 들려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에서 그냥 챙겨 나온 짐일 수도 있지만 80% 이상 나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한 마음이 들렸다. 어떤 사람은 꽃으로 어떤 사람은 케이크로 어떤 사람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어떤 사람은 생활용품을 예쁘게 포장한 그들의 마음을 함께 데리고 나온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고 놀랐다. 얼굴도 볼 겸 시간 되면 결혼식 놀러 오라고 밥을 사고 싶었는데 대체 체외 손에 뭔가를 들고 나오는 거야. 뭘 이런 걸 준비하냐고, 그냥 만나줘서 고맙다고 말해도 이 마음의 진심이 잘 전달됐을까 싶을 정도로 나의 결혼을 축하해 주는 이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챙겨주는 결혼 축하 선물은 받아도 적응이 안 된다. 받을 때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울컥울컥 올라온다. 나는 이들에게 어쩌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종이 한 장을 건네는데 그들은 양손 무거운 선물과 행복한 축하를 건네주는 게 새삼 따뜻하다. 내가 줘도 되나고 고민했던 시간이 미안하게 만드는 시간을 매번 마주한다.
20대 때는 이런 의외의 마음의 시작이 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사람들에게 잘했군, 이 사람 나를 좋아하는군,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군 하고.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 나는 안다. 나의 어떠함으로 받은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서 나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을. 이렇게 바뀐 건 역시 생각진 못한 사랑과 관심을 보내준 의외의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이제는 의외의 마음들을 받다 보면 마음속에 있는 이름 모를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기분이다. '아, 나 사랑받고 있네'. 나도 이 열매를 잘 키워 또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의외의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주어야겠다. 말은 넘어 흘러가는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