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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Jan 12. 2023

‘술꾼’으로 ‘응답’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드라마] 티빙 술꾼도시여자들, tvN 응답하라

웬일로 술 약속이 없던 금요일. 그래서일까. 일찍 퇴근하고 침대에 앉아 볼만한 드라마를 훑기 시작했다. 최근 재밌는 드라마가 금, 토, 일에 다 몰리기도 했고, 한 번에 시작한 것도 많아 못 보고 지나친 게 뭐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러다 발견한 티빙 오리지널 '술꾼 도시 여자들'(이하 술도녀). 제작 소식을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오픈이었나 생각될 정도로 관심 밖에 드라마였다.


처음 술도녀가 오픈했을 때는 웹툰 ‘술꾼 도시 처녀들’ 팬들과 관계자들만 관심을 가졌다. 황금 같은 금요일 굳이 첫 방송을 챙겨봤던 이유는 아마 후자의 이유 때문이다. 이제 막 오리지널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티빙의 새 작품이기도 하고 k-드라마 치고 30분-4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쇼트 드라마라 신선했다.


하지만 ‘술도녀’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바뀐 제작발표회 때문일까, 채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TV 방송을 하지 않아서일까, 매 회차 19세 딱지를 달고 있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술을 마시는 이유를 제외하고 맥락이 들쭉 날쭉한 서사 때문일까. 괜찮은 배우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초반 화제성을 끌지 못했다.


그랬던 ‘술도녀’가 갑자기 뜨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여성 애주가들 때문이라 추측해 본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고. ‘술도녀’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 드라마 얘기만 나오면 술도녀를 추천하고 다녔다. 한국에 없던 신박한 드라마라고,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때 틀어 놓으면 어떤 BGM을 틀어 놓는 것보다 잘 어울린다고. 것 같다. ‘술도녀’는 나의 바람대로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짤이 돌기 시작했고, 쇼트 드라마의 특성 덕분에 대부분이 한 번 시작하면 지난주 나온 8회까지 정주행 하게 되는 드라마가 됐다.


그런 ‘술도녀’에는 세 명의 여자가 나온다. 대학교 근처 술집에서 평생 술 공짜라는 부상의 술집 댄스 대회에서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세 명의 여자가 뭉쳐 우승을 거머쥔다. 달라도 너무 다른 세 친구지만 술이라는 이름 앞에서 뭉친 그녀들의 주종 스타일만큼은 일괄된다. 평소에는 미소(미지근한 소주), 즐거우면 샴페인(여기서 샴페인은 모에샹동 같은 샴페인이 아닌 소맥 폭탄주를 흔들어 만든 샴페인을 의미한다), 해장은 소주라는 똑같은 입맛으로 하나가 된 친구들.


술도녀를 보다 보면 세 가지 증상을 경험할 수 있는데 1차 증상은 술을 마시는 건 그녀들인데 내가 술 취한 것 같은 언텍트 만취, 2차 증상은 냉장고를 열어 아무렇지 않게 맥주를 꺼내 마시고 있는 나 자신, 3차 증상은 저 친구들이랑 술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 친구 중 가장 그녀들과 비슷한 친구들에게 연락해 술 약속을 잡고 있는 나 자신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매주 금요일 저녁 술 취한 나를 발견한다.


술도녀를 보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미친 텐션을 가진 한지연이나 합리적이고 가장 나랑 비슷하지 않나 생각되는 안소희를 꼽지만 내가 가장 술을 먹고 싶은 친구를 꼽자면 강지구, 바로 정은지다. 시크함과 차도녀의 모습을 겸비하며 화가 나면 멱살잡이와 쌍욕부터 내뱉으며 센 척 하지만 누구보다 여린 강지구. 술을 먹다 시비 붙으면 지켜줄 것 같아서? 절대 아니다. 한 성깔 하는 나와 같이 싸워줄 것 같아서다.


아니면 나의 개취로 정은지의 연기톤을 좋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정은지를 처음 알게 된 건 ‘응답하라 1997’이었다. 응답 시리즈, 슬기로운 시리즈로 지금은 믿고 보는 작감(드라마판에서 쓰는 작감, 드라마 삼조합은 작감배로 작가, 감독, 배우를 뜻한다)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지만 그들에게도 첫 시작이 있었으니 그 작품이 바로 ‘응답하라 1997’이었다. 온갖 가수 애들인 것도 모자라 심지어 처음 연기를 도전하는 아이돌을 모아 놓고 시작한 드라마라 ‘얘네들 데리고 가능하겠어?’라는 반응도 많았지만, tvN을 넘어 케이블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로 종영한 드라마.


처음에는 빠순이, 지금 말론 덕후 드라마라 팬지(팬지오디로 지오디 팬클럽 이름)였던 어린 시절의 감성을 살려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용이, 두 번째는 연출이, 세 번째는 캐릭터가, 네 번째는 배우 한 명 한 명이 좋아서 몇 번씩 정주행 하다 보니 어느덧 20번가량을 봤다. 사실 20번 이상인데 20번이 지나고 세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볼 수 있던 건 정은지의 연기 덕분인 것 같다. 특별한 쪼도, 아무런 기교도 없는 그냥 일상 생활하듯 내뱉는 연기가 좋았다.


사실 그 이후에는 업계 떠도는 ‘응답하라’ 징크스처럼 출연 작품이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았다. 노희경작가와 송혜교로 주목받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정도지. 아무도 모르게 끝난듯한 ‘트로트의 연인’, ‘발칙하게 고고’ ‘언터처블’ 같은 작품 까지도 정은지의 작품은 잘되든 안되든 일단 다 봤다. 의리반, 애정반, 언젠가 다시 대박칠 캐릭터를 만날 것이란 기대 반으로. 그리고 그 기다렸던 기대가 이번 ‘술꾼 도시 여자들’에서 현실이 됐다.

‘술꾼 도시 여자들’의 강지구를 보다 보면 마치 ‘응답하라 1997’ 고등학생 성시원이 커서 친구들과 삶을 나누며 술잔을 나누는 드라마 같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괜히 보는 내내 뿌듯해진다. 그래서 ‘술도녀’의 세 친구를 더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마치 ‘응답하라 1997’을 보던 대학생의 내가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술꾼 도시 여자들’을 보며 술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삶을 사는 모습 같아 나도 모르게 위로받고 있던 게 아닐까.


쓰고 나니 정말 술 당기는 밤이다. 이번주에는 누구랑 술을 먹지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겠다.


“술은 항상 스토리를 만들지. 나는 자네 같이 인간적인 스토리가 좋아”
- 술꾼 도시 여자들 ep.7 ‘우리가 직장을 그만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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