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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Jan 29. 2023

돈 줄 막힌 금요일

[아무튼 금요일]

날씨가 추워지기 생각하면 생각 나는 금요일이 있다. 2020 12 마지막  금요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갑자기 증가하면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금요일. 이사님으로부터 카톡이 먼저 왔다. 우리 회사는 12 셋째  혹은 넷째  금요일 연봉 협상을 하고, 1  연봉 계약서를 작성한다. 정확히 말하면 연봉 협상이란 마라보다 통보 사인회라는 말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연봉 계약서 사인을 위해 하루 출근하라는 이사님 카톡이겠지 생각했다. 벌써 12월의 마지막 주였기 때문에 속으로 ‘올해는  늦었네생각하며 카톡을 확인했다. 말투는 원래 이사님 모습처럼 다정하지만 내용은 회사처럼 다정하지 않은 메시지를 보내셨다.


“코로나 인해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재택근무하느라 여러모로 힘들고 예년 같은 연말, 연초도 아닌 상황에 부원들에게 양해의 말을 전합니다. 올 한 해 코로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경영상황이 좋지 못하였고, 내년에도 코로나가 언제 풀릴지 몰라 경영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하여 내년 경영상황을 고려해 전체 임직원들의 2021년 연봉을 동결하고, 승진도 2022년으로 1년 미루어서 시행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원 여러분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위기를 잘 견뎌내도록 합시다요. 다들 힘내시고, 1월에 얼굴 봅시다^^ 항상 건강 조심하고, 남아있는 연말 시간 잘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곱절 이상으로 복 많이 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니.. 새해 곱절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보다는 월급이 필요한데요 이사님….. 그리고 1월의 셋째 주 금요일 이사님으로부터 다시 카톡이 왔다. “멜로디과장 내 방으로 좀 오세요..” 말 줄임표에서 느껴지는 강한 돈 냄새. 이맘때쯤 오는 카톡은 1월 첫 월급이 나가기 전 연봉 계약서를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며칠 전이자 이제는 작년 말. 이미 연봉 동결 통보는 받았기에 연봉 계약서 사인 전 나름의 어필이 필요하다 생각해 준비했던 나는 차근차근 2020년 나의 업무 자료를 준비했다. 그리고 문자와 함께 인쇄 버튼을 눌렀다. 나의 2020년 포트폴리오 이자 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 나의 연봉에 힘을 실어줄 경력 기술서. ‘전사 동결’이란 결정에 예외가 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팔랑거리는 A4용지 한 장에 담아 구겨지지 않도록 빳빳하게 들고 이사님 방으로 갔다.


2019년 연봉 협상을 마치고, 2020년 첫 코로나가 터졌다. 그리고 코로나 2년 차가 시작하는 시점에서의 연봉 협상. 공연, 방송 업계의 많은 회사들이 폐업을 했고, 오프라인 행사가 죽었던 상황이라 연봉을 원하는 만큼 올리기 힘들다는 사실은 직감하고 있었다. 투어, 공연으로 돈을 버는 음반 업계와 달리 배우들의 영화, 드라마 촬영 현장은 계속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포지션은 코로나 때문에 더 바빠지면 바빠졌지, 일이 없던 팀은 아니라고 생각… 아니 그 누구보다 일이 많고, 빡센 한 해를 보낸 팀이었다. 그래서 많이는 오르지는 않겠지만, 기본 연봉은 오르겠지라는 생각이 이미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터에 ‘동결’ 하지만 동결이라는 단어는 나의 수많은 계획 중에 없던 단어였다.


어디서든 의견 전달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거나, 말을 못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A4용지 한 장으로 정리한 나의 2020년 포트폴리오를 정리해 조목조목 읊었다. 내 말을 들은 이사님께서도 어느 정도 수긍은 해주셨지만, 전사의 지침이라 올해는 변동 가능성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일 년의 수고를 꾹꾹 담아 들고 갔던 종이지만 결국 팔랑거리는 한 장의 A4용지 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은 답변이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코로나에도 적응돼 회사도 대응 사업을 준비 중이니 내년에는 챙겨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 앞에서 나는 “아.. 네… 꼭 내년에는 챙겨주세요”라는 말 밖에는 하고 나올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연봉이 오르지 않았음에도 ‘아…네…’하고 나왔을 수 있던 이유는 다시 재택근무가 시작돼서 가 아닐까 싶다. 연봉은 동결됐지만 재택근무를 하니까 교통비, 식비를 아낄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이런 생각으로 수긍했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몇 주 지나지 않아 회사는 재택 장기화로 인해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판단해 격일, 격주로 출근을 시키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내가 연봉 동결에 동의할 때 고려했던 것과 다르다고!!!


원래 매일 가던 회사인데 괜히 억울했다. 예전에는 회사를 어떻게 다녔나 싶을 정도로 억울했다. 일산에서 청담까지 한 달 교통비만 10만원, 식대 지원도 없는데 청담동 점심 음식점이 얼마나 비싼데!!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코로나라도 물가 상승률에 따라 최저 임금은 올랐는데, 연봉을 동결시켜 버리면 나는 오른 물가에서 어떻게 살라고!!


이런 와중에 일로 가장 많이 부딪히는 유관 부서의 무능력함과 비효율적인 일처리는 그저 답답할 뿐이고, 프로그램 시작 전 마케팅 회의 때 공유했던 우리 회사(정확히는 나의) 아이디어를 채널 측에서 도둑질한 것도 모자라 채널의 갑질로 밀어붙이고 있는 꼴이고, 이런 문제를 말해도 그냥 ‘하지 마요’라고 가볍게 넘겨버리는 것 같은 부장님의 무심함에 짜증 날 뿐이고. 삼중고를 제대로 겪은 금요일이다.


아마  일을 사랑하지 않고,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바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면담을 하고 나와 그동안 제안 왔던 여러 회사들의 이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불쌍하게 아직  회사 사람과  일이 좋았다. 그래서 아직까지 남아 열일을 하며 오늘도 ‘야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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