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 없이 들어온 남자가 서 있었다. 내게서 주문을 받던 직원이 아는 체하지 않았더라면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주문을 받고 계산대로 돌아가던 직원은 남자 앞에 가 인사했다. 웬일이냐는 물음을 보아하니 아는 사이 같았다. 그렇다고 잘 아는 사이 같지는 않았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거나 일하다 잠깐 얽혔던 사이, 혹은 한때 자주 찾아오던 단골 정도의 관계로 보였다. 평일 낮 시간의 방문에 직원은 반가우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휴가를 내고 왔다고 말했다. 휴가인데 여기에 와준 거예요? 다정한 투로 기뻐하는 직원에게 남자는 수줍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남자는 중앙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키가 아주 컸다. 어디서든 눈에 띌 정도였다. 와인색 모자, 꼼꼼히 단추를 잠가 입었을 셔츠 위로 카키색 니트를 덧입었다. 의자에 걸쳐 둔 패딩 조끼도 니트보다 조금 밝은 연둣빛이었고, 중청 데님에 어울리는 워커부츠까지 짙은 카키브라운 색을 띠고 있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골라 입었겠구나. 옷에 꽤나 신경 쓰는 사람이구나.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생각했다.
남자의 세심함은 옷차림이 주는 인상보다 행동에서 더 크게 드러났다.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고 휴대폰까지 일렬로 줄 세웠다. 수첩을 펼쳐 무언가를 적었다. 큰 손과 달리 깨알같이 작은 글씨체였다. 다른 이들은 두 세장에 걸쳐 늘어놓을 분량을 한 페이지에 꽉 채운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지나치게 세심할지도 모른다. 남자들 중에선 상위 3% 정도. 뭘 쓰고 있는 걸까. 업무와 관련된 내용일까. 저런 사람이라면 일기를 쓸지도 몰라. 남자는 5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저런 사람’이 되었다.
자세히 본 남자의 얼굴은 섬세한 성격과는 이질적이었다. 까맣고 짙은 눈썹, 구릿빛의 피부, 큼직한 이목구비. 운동선수나 군인 같은 엄격한 원칙주의자의 분위기를 풍겼다. 어딘가 나빠 보이기도 했다. 선한 웃음을 버리고 눈썹을 한껏 치켜올린다면 충분히 나빠 보일 것 같은 인상이었다. 예민함이 수줍음과 섬세함을 뚫고 나오는 날이면 그런 나쁜 표정을 지을 지도. 몸은 다부졌다. 큰 키와 어울리는 넓은 어깨에 통통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탄탄한 체격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 정해진 날에는 빠트리지 않고 헬스장을 찾는 사람. 하지만 근육이 드러나는 자신의 몸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을 사람. 절대.
남자가 앉은 테이블에 사과 샌드위치가 나왔다. 새콤달콤해 보이는 과일 음료도 함께였다. 빵과 과당을 고를 줄은 몰랐는데. 예상외의 메뉴였지만 먹는 방식은 예상대로였다. 두툼한 샌드위치를 손에 들지 않고 칼로 반듯이 썰어 입에 넣었다. 마지막 한 입을 넣을 때까지 흘리는 법이 없었다. 역시.
남자는 가게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어났다. 군더더기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전에 왔을 때는 음식을 먹다 말고 가게를 뛰쳐나갔다던데. 무슨 급한 일이 있었던 걸까. 어울리지 않게.
와인색 모자와 카키색의 조화는 그와 잘 어울렸다. 함부로 물건을 놓지 않는 태도 또한 그랬다. 조용하게 글을 쓰고 깔끔히 밥을 먹는 모습도 그 다웠다. 그는 그런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보았던 남자는.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쓰던 글을 마저 쓰거나,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던 독립영화 한 편을 보러 혼자 영화관을 찾았을지도. 친구들과 소맥을 거나하게 마시거나 새벽까지 클럽에서 춤을 추지는 않을 것이다. 우연히 남자의 SNS라도 발견한다면 어디에 갔는지 알게 될 수도 있다. 마음에 드는 카페나 강아지와 함께 공원을 걷는 사진, 영화를 보고 난 후기 같은 걸 게시한다면 말이다. 평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딜 가는지 더 자세히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진짜일까. 편집된 사진 몇 조각이 진짜 그를 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20분간 보았던 남자는 진짜일까. 그는 어제도 내일도 같은 모습으로 단정하게 신경 써 옷을 입고 수줍게 웃음 짓고 수첩에 빼곡한 글을 쓸까.
모른다. 그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잠깐의 옆모습 같은 것으로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내 눈에 띈 단편들은 쉽게 부풀려지고 그를 재단하는 근거가 되고 만다. 고작 몇 가지 파편이면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니까.
화장기 없이 깨끗한 얼굴, 깡총한 단발머리, 작지만 동그란 눈의 여자는 선해 보였다. 살짝 올라간 코끝이 귀여운 이미지를 더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했다. 지난번엔 어딜 그렇게 급히 떠났냐고 물었다. 다정한 말투였다. 일자로 떨어지는 데님 바지에 네이비색 플리스 재킷을 입었다. 편안하면서 멋스러웠다. 상냥하고 꾸밈없는 그녀와 잘 어울리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화낼 줄 모르는 미련한 구석이 있을지도 몰라. 여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자는 가게 한구석의 직원 전용 구역으로 들어갔다.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는 듯했다. 불투명한 시트지가 문 건너편을 가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문 너머의 여자는 똑같이 다정한 목소리로 통화하고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일하기 싫다며 남자친구에게 칭얼대고 있을 수도 있다. 아주 어쩌면 잔뜩 화가 난 채 욕설을 내뱉으며 말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그럴 리 없겠지만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