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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IAN May 28. 2023

아무에게도 부치지 못한 편지 2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던 나의 비밀, 사실 저는..

  저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선택과 도전은 순전히 저의 호기심 때문일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삶의 도전과 경험들이 다른 이들은 제가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보이나 봅니다. 제 경험들을 얘기할 때면 대게 그런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삶에 열정적인 타입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했던 일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호기심이라는 게 결국 실제로 시도한 후에는 전에 가지고 있던 판타지와 같은 것들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인생의 동력이던 호기심들은 수차례 와장창 깨어져 나가는 판타지들로 인해 점점 소멸해 갔습니다. 결국 지금은 호기심 가는 것이 많지 않아 졌습니다. 태어나서부터 20대까지 너무 많은 시도를 해버린 것일까요. 이제는 ‘해봤자..’라는 생각으로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일들이 잦아졌습니다. 덩달아 모든 게 시들해져 간 것이죠.


 정신과 치료를 처음 시작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두통과 호흡곤란등의 증상이 일상생활조차 힘들게 만들어서 온갖 병원 전전하며 검사들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할 원인을 찾지 못했고 정신과 진료를 권유해서 그렇게 처음으로 정신과에 발을 딛었습니다. 처음 정신과를 가기까지 굉장히 많이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해도 정신과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어쩌면 지금도 그런 부분이 있지만) 때문에 누구에게도 통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말하면 분명 심하게 걱정하시거나, 위로라고 내뱉는 말들에 오히려 더 상처받고 말아 버리는 상황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치료도 그리 꾸준히 다니지 못하고 한동안 가지 않았다가, 또다시 증상이 심해져 다른 병원으로 갔다가, 그만두었다 하는 반복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치료받으면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어 너무나도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질문에만 답하고 바로 약처방을 받고, 약을 통해서 많이 나아진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제가 생각하던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병을 꼭 치료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답답한 마음에 좋은 정신과 병원은 진정 없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또다시 발동 걸려 서울의 이런저런 병원을 수색했습니다. 하지만 찾지는 못했죠.


 또다시 버티는 삶을 하루하루 살다가 몇 해가 흘러 이제는 제 직업생활을 하지 못할 만큼 공황발작과 공포증, 무기력증이 심해졌습니다. 일을 하루하루 해나간다는 게 미친 듯이 두려움과 공포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때도 통원치료와 약물치료를 2년간 해오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던 것이죠. 점점 더 심해져 갔고 우울의 깊이와 반복되는 주기도 점점 더 길어졌습니다.


 결국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고 몇 날 며칠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손가락 까딱하기 조차 싫고 힘들어진 것입니다. 이런 기분과 느낌이 몇 달이 지속되자 점점 저는 과묵해지고 언제나 혼자 있었고 표정도 사라져 갔습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에도, 지식을 얻는 것에도, 운동을 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제게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점점 죽음이 길로 돌아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삶은 이만 등져도 될 것 같다고 계속해서 생각하게 됐죠. 그 무렵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니, 가족에게만큼은 사실을 조금 털어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제 죽음을 알게 된다면 그건 너무나도 고통이 될 수 있기에, 그건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심스레 엄마에게 제 오랜 만성우울증과 치료, 증상들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여동생, 친한 친구에게도 하나 둘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따뜻한 위로라던가 응원을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다만 내가 죽음을 더 빨리 택할만한 말만 하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왜냐하면 겨우 버티고 있는 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결국엔 전 어떠한 포인트와 어떠한 말들로 상처를 받고야 말았고, 더 이상 털어놓지 말아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전적으로 저를 이해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이해는 갔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큰 허탈함과 서운함이 남았습니다. 날 낳아준 엄마조차도 이 병을 겪어보지 않으면, 아니 나 자신이 아니면 어떻게 위로할지 조차도 모르는구나 그렇게 속 깊게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난 엄마마저도 잃을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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