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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IAN May 28. 2023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서 1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가끔씩 인생을 살다 보면 일진이 사나울 때도 있다. 당연한 거다. 나도 안다.

 

하지만 오늘은 일진 사나웠던(?) 그런 사소한 사건들 때문에 급 우울해지고 화가 나는 건 아닌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30분 전쯤 엄마와의 통화를 마쳤고 그리고 기분이 아주 우울하고,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사실 이번만이 아니다.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 본가에서 나와 서울에서 홀로 살아가야 했던 나는 약 13년 정도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일들과 고민들을 가족에게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고, 그러면서 어쩌다가는 한동안 길게 연락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또 그런 일들을 매번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도 어려웠다. 어떨 땐 큰맘 먹고 고민을 털어놓아도 위로는커녕 되려 상처만 더 받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들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사실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사람도 쉽게 믿지 못한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될만한 일들이 있지만 그 일들을 일일이 다 말하기도 쉽지 않다. 누구나 그런 상처가 있고 과거가 있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난 나를 자책한다. 이번에도 난 무너졌구나, 이번에도 난 일어서지 못하고 말았구나.. 하면서 말이다. 근데 또 이러고 있는 내가 못마땅한 것이다.


이 얼마나 꼴불견이고 청승인가.. 말하기도 싫다.


 근데 이 모든 걸 그나마 알고 있는 사람이 유일하게 내 어머니이고, 그런데도 매번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 비난하는 말투, 인정하지 않는 말들.. 그런 소리들로 나는 시들어진 마음에 생채기 또다시 생채기가.. 반복의 반복이다.


 난 또다시 상처받을 걸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왜 매번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마는 걸까.

막상 전화를 걸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욕먹을까 두려워한다.(실제로 0.1초 만에 욕을 먹고 만다.)


 사실 난 요즘 정신과 병원을 옮기고 주치의와 약을 바꾸면서 상태가 2주간 꽤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주치의 선생님도 느꼈던 부분이다. 잘 견뎌오고 있다, 잘 해내고 있다 토닥이며 조금씩 조금씩 살아내고 있었는데, 고민 끝에 했던 엄마와의 통화가 한순간에 날 다시 원점으로 돌이킨 기분이다. 그래서 이게.. 이 사실이 너무 싫고, 화나고, '내가 문제인가, 아니면 연락을 아예 하지 않는 게 답인가..' 하는 여러 생각들이 솟구치고 또다시 '죽고 싶다. 현재가 싫다.'라는 생각으로 번졌다. '역시 난 안돼, 난 무능력자야, 난 살아있는 의미가 없어..'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 또 시작이구나...'
그렇다면 큰 원인은 엄마에게 있었던 걸까?'


이러면서도 매 순간 그 원인이 엄마가 아닌 나이길 바라며 자책으로 돌린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엄마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화나 만남은 매번 나를 이렇게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싫고,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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