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길이 많은 우리 사이
요즘은 사람 간의 소통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속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일이 훨씬 많다.
궁금하거나, 속상하거나, 화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자랑하고 싶다거나, 심심하다거나.. 우리는 모든 순간 일면식도 없는 인터넷이란 공간의 누군가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수많은 정보들은 시각, 청각을 통해 뇌로 순식간에 받아들여지고 거기서 파생되는 수많은 생각, 기분, 판단 등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요즘 기분이 급변한다던가, 갑자기 무언가에 의심스럽다던가, 하다못해 갑자기 누군가를 사랑한다거나, 끌린다거나 궁금해진다던가 등 나의 모든 변화 일거수일투족 매의 눈으로 감시를 하다가 곧바로 관련 키워드를 치고 검색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결과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다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으로 전개시킨다. AI가 따로 없다. 내가 AI인지 AI가 나인지 종말엔 구분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지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누구의 탓이라 결론 내기리엔 수많은 원인이 존재할 텐데, 자꾸만 아픈 상처를 긁어대며 원인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순식간에 악마가 되어 버릴 수 있는 판단의 대상. (너무 몰라서가 아니라 가끔은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엄마의 탓이라 생각하는 것도, 내 탓이라 생각하는 것도, 어두웠던 과거를 탓하는 것도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 갑자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쯤 해두기로 했다.
하지만 남는 게 전혀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엄마와의 대화 후 반복되는 내 우울과 자존감 하락의 원인을 알게 된 데에는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자주 할 짓은 전혀 아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곪은 오래된 마음의 상처, 그로 인한 트라우마, 어느 순간 연약해진 자존감과 자아, 그리고 우연히 깨달은 인간으로서 엄마에 대한 이해.. 그것들로 지금의 많은 사실들을 설명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단단해지거나 아픈 구석이 한 번에 나았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치료가 필요하다 생각하고, 또 낫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나도, 엄마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서로를 사랑한다.
서툴렀던 사랑의 방식이 서로를 다치게 했던 적도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 나는 앞으로 서로가 덜 다치게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