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그곳에 있다.
날이 좋든, 흐리든,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그냥 밖으로 뛰쳐나간다. 매일은 아니지만 잡념이 덮쳐올 때, 슬픔의 그늘이 드리울 때, 감정이 주체가 안 될 때..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은 채(폰을 두고 나가면 더 좋다) 밖을 나선다.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 혹은 가장 조용하고 큰 자연이 있는 곳을 택한다. 날씨 탓도, 무거운 몸 탓도, 거리 탓도, 위치 탓도 하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가 버리는 것이다.
형광등 아래서, 인공적인 틀 안에서 수도 없이 굴리고 상상하던 나의 헛된 공상들은 위대한 자연을 마주한 순간 와장창 깨어져 나간다. 해가 없어도 된다. 달빛은 달빛 나름대로, 햇빛은 햇빛 나름대로 뜻이 있다, 가르침이 있다. 자연 속에서 한없이 겸손해지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뻔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누구든 광활한
자연에 마주하게 된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아직도 항우울제를 놓지 못하는 나이지만, 증상이 심각해질 때엔 약도 먹히지 않는다. 그럴 때면 그냥 죽자는 생각으로 밖을 무작정 뛰쳐나가 가장 가까운 큰 공원으로 나선다. 난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데, 그저 자연에게 한 걸음 다가섰을 뿐인데, 길가의 들꽃이, 나뭇잎이, 달빛이, 때론 빗방울이 나를 위로하고, 또 가르침도 준다. 이유도 모른 채 성공이나 행복 그 비슷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쫓고 있던, 갈구하던 웅크린 내 주먹이 자연 앞에선 맥없이 풀려버리고 만다. 결국 나의 목을 조여 오는 것은 내 안의 욕망, 그리고 이내 또 사회에 쉽게 휩쓸려 버리는 내 연약한 영혼이다.
길가의 들꽃을 보면, 가만히 먼 곳을 바라보는 새를 보면, 우뚝 솟아 있는 나무를 보면, 당당히 시간 앞에 맞서 그저 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시간에 쫓기던 내가 한없이 어리석어 보이는 순간이 있다.
팔을 벌려 앞뒤로 세차게 흔들며, 바람에 몸이 자연스레 흔들거리게, 중력을 딛고 두 발로 당당하게 한걸음 두 걸음 갓 태어나 첫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그저 걷는다. 숨을 쉰다. 들이마시고 내뱉고, 하늘을 바라보고, 피부에 스치는 공기를 느끼고. 그저 그것만으로도 된다. 그냥 그거면 된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숨을 크게 들이쉬며 살아있다고 쉬 흘러가버리는 시간에게 당당히 고개를 들고 가슴을 내민다. 그러면 신은 그곳에
있다. 조금 더 살아보라고 내게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