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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IAN Jun 15. 2023

오빠는 사라졌다.

어딘가에 있을 그가 그리울 때면

  남사친 따위 있을 리 없는 여중, 여고 출신의 장녀, 유교걸.. 그게 나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동기, 선배, 후배들의 남자 사람 친구들이 생겨났고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고민을 털어놓거나, 기쁜 일을 공유할 수 있는 인생 선배이자 친구인 한 남자가 생겼다. 나는 그를 오빠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비슷한 면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대화가 술술 잘 통하고 편함을 느꼈다. 남자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실을 어쩌면 오빠는 정작 몰랐을 수 있다. 난 오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으니까. 언제나 내 말을 잘 경청해 주고 하나라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오빠가 친오빠처럼 늘 고마웠다.


 풋풋하던 대학생활을 졸업하면서 하나둘 사회의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고, 점점 일상은 치열하고, 정신없어지고, 바빠졌다. 무급에 가까운 인턴생활과 정규직 취업에 대한 압박, 스트레스들로 녹초가 되어 있을 때면 우린 종종 만나 술 한잔씩 기울이며 서로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래도 그땐 젊고 힘 있던 이십 대였던 것 같다. 함께이면 힘이 났고, 그렇게 견딜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빠에게 점점 연락하는 일이 줄었고 그저 서로 일하느라 바빠서 그러겠거니 하며 넘겼다. 하지만 드물게 연락하던 와중에도 약속을 잡아 서로 보기로 했던 몇몇 날에도 이전에 없던 당일 약속 취소를 한다던지 그리곤 답이 없다던지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때부터는 조금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반년 조금 지나서 오빠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던 날이다.


 우리는 이태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칼퇴 후 평일 저녁 일부러 시간을 냈다.

글세.. 오빠가 조금 어두운 차림의 옷을 입고 다소 더워 보일 수 있는 비니를 쓴 것 말고는 달리 다른 점은 못 느꼈다. 나는 보자마자 날씨에 비해 조금 더워 보이는 비니를 보며 덥지 않냐고 우스갯소리로 물었고 오빤 덥진 않다며 자연스레 넘겼다. 지금 와 회상해 보면 왠지 조금은 얼굴에 어둠이 서려있었을 것만 같다.


 우리는 여느 풋풋한 청춘들처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예쁜 사진처럼 남아 있는 그때의 기억.. 그 속의 그는 지금 없다. 이 세상에서 그를 이젠 부를 수도, 볼 수도 없다. 문득 그를 만나지 못한다는 알아차림의 순간이면 슬프다. 눈물도 난다. 무시무시한 그 병은 밝고 건강하던 그를 아닐 듯 순식간에 하늘로 데려가버렸다.


 이태원에서 해 질 녘 하늘을 남산타워 밑 언덕배기에서 바라보며 그가 남긴말처럼 나는 과연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는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하고 싶은걸 다 하면서 살라고 말했다. 다른 무수한 말도 많았겠지만 유독 내 마음에 아직까지 꽂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나는 정말 치열하게 온 힘을 다해서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며 20대를 꽉 채워 보냈다고..하지만 지금 내가 30대가 되어보니 그것도 정답이라 할 수는 없더라고. 물론 후회는 시도하지 않은 자보단 덜 할 수 있지만, 그 잠깐의 갈증의 해소와 같은 깨달음들이 가끔은 날 더 무르고 혼란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고. 그렇게 털어놓고 싶다. 오빠라면 어떻게 하겠어? 오빠는 어떻게 했어?라고 겨우 인생 3년 더 살았을 뿐인 선배이지만 꼭 그에게만 묻고 싶어지는 질문들은 내뱉지 못한 채 쌓여만 간다.


그립다, 그가.

 그다지 많지 않은 진정한 친구 중 한 명이고 소중했던 멘토이자 선배인 그를 전화를 걸어 불러내고 싶다. 마지막 순간, 힘들었을 순간, 아팠을 순간 나를 부르지 그랬냐고 투덜거리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어쩌면 그렇게까지의 존재가 되진 못했던 것일까 하며 되새겨본다.


 순수하고 따뜻했던 그의 영혼은 천국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직접 전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때에 하지 못했던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오빠, 우리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
난 이곳에서 오빠 말처럼 마지막까지 원하는 삶의 길을 향해 최선을 다해 걸어가 볼게. 아직도 어렵고 불안할 때가 있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뭐였는지 되돌아보면서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가 볼게....
고마웠어.
덕분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기억해.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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