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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Oct 19. 2021

당근으로 키웠어요.

프로당근러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혀서 어린이집에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올 봄에 입었던 긴팔 옷을 꺼내 입혔다. 조금 작았다. 쌍둥이가 등원한 후 당근마켓과 중고나라를 전전했다. 어차피 한 철 입히고 나면 또 쑥 커버려서 못 입힐 옷, 중고로 사입히자 싶었다.     


육아의 세계에 발을 디딘 후 하루라도 당근마켓에 들어가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힐 것 같았다. 나는 육아템을 당근마켓에서 공부했는데 그 종류가 무궁무진해서 당근마켓을 몇 시간동안 해도 질리지가 않았다. ‘당신의 근처’의 줄임말인 당근은 그 이름처럼 가까운 지역의 중고거래를 기반으로 한다. 이웃과의 거래이기 때문에 매너가 중요하다.     


당근마켓은 온도로 레벨틀 특정한다. 사람의 온도인 36.5도로 시작해 거래건수가 많아질수록, 매너가 좋을수록 온도도 올라간다. 36.5도씨였던 시절, 꼬마당근러 시절에는 모든 거래가 조심스러웠다. 소심한 탓에 혹시 사기라도 당하지 않을지 물어볼 목록을 꼼꼼히 적었다.     

 

쌍둥이라서 뭐든지 두 개씩 구매해야 했기에 거래는 더 어렵다. 비슷한 디자인의 비슷한 상태의, 실은 거의 새것과 같은, 물건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생아 시기에 유용한 역류방지쿠션 역시 같은 디자인을 구하느라 한 달이 걸렸다. 그런데도 하나는 사용감이 없는 편이었고 하나는 사용감이 많은 편이라 쌍둥이를 돌아가면서 눕혔다.      


온도가 40도쯤 올라가면 스피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사고 싶은 물건을 키워드로 등록해놓았다가 알람이 울리면 바로 메시지를 보내는, 인터넷 속도와 손가락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 인기 육아템인 스윙과 바운서, 놀이매트, 장난감등을 무료나눔이나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은 속도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50도쯤 되면 팔 아이템들이 생긴다. 아기성장발달에 따라 육아템이 다 다른데, 아기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므로 육아템도 빨리빨리 바꿔줘야 한다. 나 역시 판매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신생아 때 쓰던 용품들을 저렴한 가격이나 무료나눔으로 처분하고 또 새로운 육아템들을 구매했다. 구매와 다르게 판매할 때는 눈치싸움이 필요하다. 내 물건을 사고 싶게 예쁘게 찍고 적당한 가격에 팔기 위해 검색도 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판매자가 올린 물건보다 더 매력있게 보여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이 아이템 없는 육아는 상상할 수가 없네요.’ 라는 말을 덧붙여서 이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어필했다. ‘말이 필요없는 육아템인데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이 물건 아시는 분이 가져가시면 좋겠네요.’ 라고 덧붙인 거래글에는 채팅이 순식간에 4개나 왔다. 기어다니는 아기에게 딱인 장난감을 올렸을 때는 1분 만에 8개의 채팅이 오기도 했다.      


60도쯤 되면 눈썰미가 생긴다. 이 물건의 사용감이라던지 판매자는 대략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게 된다. 불친절하거나 거래약속을 쉽게 파기하는 사람과는 거래하고 싶지 않기에 판매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꼭 살핀다. 당근마켓 꼬꼬마시절, 젖병젖꼭지를 싸게 팔길래, 아침에 아기들을 맡겨놓고 버스타고, 또 걸어서 사러 갔는데 30분을 기다려도 판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추워서 벌벌 떨다가 돌아오고나니 연락이 왔다. 깜빡했다고. 허탈했다. 그 후로는 꼭 연락처를 받는다. 무례한 구매자도 가끔 만난다. 연락두절, 구매약속 해놓고 다른사람에게 팔아버리기, 상품 디테일 안알려주기, 메시지 쌩까기 등. 그러나 대부분은 매너가 좋다. 인형 여러개를 무료나눔으로 올렸는데 강아지 장난감으로 주고 싶다고 한 구매자는 내가 좋아하는 핫도그를 두 개나 사왔다. 이런 좋은 경험들 때문에 나 역시 무료나눔을 받으러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않고, 내 물건을 구매해주는 구매자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보내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많은 당근러들이 비대면거래를 선호한다. 물건을 문 앞에 두면 구매자가 알아서 찾아가는 식인데 문고리에 걸어둔다고 문고리거래라고도 한다. 택배거래도 활발하다. 대형편의점체인은 중고거래가 활성화됨에 따라 비용을 절반으로 줄인 반값택배를 시작했고 반응도 뜨겁다. 나 역시 반값택배 애용자다.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코로나시국에도 당근은 돌아간다.       


나는 오늘도 당근에서 아이들을 키운다.

다음 아이템은 미끄럼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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