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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Oct 22. 2021

모유수유라는 천국

가슴의 쓸모


몰랐다. 어느 순간 그렇게 갑자기 모유가 나올 줄은. 출산에 대해서 나는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어쨌든 맘카페에서 대충 읽은 바에 따르면 출산 3-4일쯤 젖이 돈다고 했다. 젖이 돈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응급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한 지 4일 차. 원래는 퇴원을 했어야 하는 날이었다. 혈압이 떨어지지 않아 퇴원하지 못하고 하루 더 입원하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탕비실에서 물을 마시고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내 환자복의 가슴 부분이 젖어있었다. 어? 왜 젖었지? 침대로 돌아와 커튼을 치고 살펴보니 유두에서 젖이 방울방울 나오고 있었다. 맙소사! 젖이 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나는 조리원에 있어야 한다. 맘카페의 선배맘들은 퇴원 후 산후조리원에 가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가르쳐준다고 했다. 그 ‘모든 것’에는 모유수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 젖이 돌 즈음에는 산후조리원에 있을 테니 병원에서는 아무 준비할 필요도 없다는 글을 여러 번 읽었다. 문제는 내가 퇴원을 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조리원으로 가지 못했고 ‘도는 젖’에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


맘카페를 찾아봤다. 간호사에게도 물어봤다. 결론은 지금 젖을 짜줘야 한다는 것. 유축기를 이용해서 젖을 짜서 비워내야 젖이 뭉치지 않는다고 했다. 젖이 뭉치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급하게 남편이 유축기를 사 왔고 유축했다. 노란 빛깔의 모유가 젖병에 담겼다. 초유다.


5일 차, 퇴원을 했다. 퇴원을 하면서 이틀간 짠 초유를 신생아 중환자실의 간호사에게 전달했다. 초유가 왜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다고 하니 인큐베이터에 있는 쌍둥이에게 꼭 먹이고 싶었다.


6일 차, 쌍둥이의 퇴원과 함께 조리원에 입소했다.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늦은 점심을 먹자마자 나이 지긋한 신생아실 선생님이 들어와서 다짜고짜 내가 입은 조리원복의 단추를 풀고 유두를 꼬집기 시작했다. 젖이 뚝뚝 흘러나왔다. 선생님은 능숙한 솜씨로 유축기에 깔때기를 연결해 내 가슴에 갖다 대었다. 남편이 사 온 유축기와는 차원이 다르게 젖이 뿜어져 나왔다. 가슴 마사지를 담당하는 원장님이 나는 젖양이 많고 젖질이 좋아서 쌍둥이도 충분히 먹일 수 있겠다고 기뻐하며 말했다. 가슴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참젖이라고 조리원 원장님은 칭찬했다. 빈약해서 옷을 입어도 태가 안나는 볼품없는 가슴이었는데 출산 후에야 진가를 발휘했다. 없던 젖부심이 생겨났다.


방으로 돌아와 유튜브로 모유수유에 대한 강의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쌍둥이는 이른둥이로 태어나 몸무게가 적게 나갔고 힘도 약했다. 힘이 약해 직접 수유를 할 경우 빨다가 탈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몸무게가 나갈 때까지는 직접 수유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4시간 마자 젖을 짰다. 아기를 안으면 내 가슴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벌려댔다. 젖 냄새를 알고 그런 건지 본능인건지 가슴을 향해 입을 벌려대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짹짹거리는 아기참새에게 꼭 모유를 먹이고 싶었다. 모유가 좋다고 다들 말하니, 더군다나 작게 태어난 아이들이라 꼭 먹여야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좋아하지도 않는 미역국을 매 끼니마다 남기지 않고 다 먹었고 모유에 좋지 않다는 음식은 최대한 피했다.  조리원을 퇴소할 무렵에는 한번 유축할 때 젖병 두 개를 꽉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젖양이 많아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직접 수유를 시작했다. 쌍둥이는 수유쿠션 위에서 용케도 내 젖을 찾아 잘 물었고 잘 빨았다. ‘나’라는 존재가 두 아이의 생명을 오롯이 책임지고 있는 것 같아 기뻤다. 나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쪽쪽 젖을 먹는 아기를 보면서 에너지가 솟았다.


자고로 가슴이란 이런 역할인 것이다. 누군가를 먹이고 살리는! 20대 중반, 아주 잠깐 가슴성형을 고민했던 내가 우스웠다. 가슴이 크든 작든 어떻게 생겼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볼품없었던 가슴이 해내고 있는 일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나는 점점 퀭해졌고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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