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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Nov 03. 2021

육아의 시간

시간은 약이 아니에요


쌍둥이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육아 난이도가 초절정에 이르렀다. 최악의 시간은 밤이었다. 나의 밤의 일과는 대략 이러했다.     


쌍둥이를 어렵게 재우고 육퇴를 하나 싶은 찰나에, 이앓이를 시작한 하늘이가 채 30분도 잠에 들지 못하고 깨어난다. 목청이 찢어져라 울고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흔들어도, 바운서에 태워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너무 울어서 흐르는 콧물 때문 힘든가 싶어서 콧물을 빼주고 손에 까까를 하나씩 쥐어준 뒤 슬금슬금 아기띠를 꺼낸다. 아기들의 지능이 얼만큼인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아기띠를 보고 나서야 울음을 멈추는 걸 보고는 도대체 넌 뭐야, 한숨 쉰다. 아기띠를 매고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토닥일 때, 또 들려오는 울음소리. 자다가 뒤집기를 시도한 하나다. 하나는 에너지의 팔 할을 뒤집는 데에 썼다. 틈만 나면 뒤집고 싶어서 끙끙 댄다. 뒤집을 줄은 아는데 되집을 줄 모른다. 되집기를 시도하다가 성에 차지 않아 울어버리곤 했는데 자면서도 이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자다가 뒤집기를 시도한 하나가 되집기를 못해 폭발해버렸다. 하늘이를 안은채 하나를 바로 눕히고 토닥이지만 달래지지 않는다. 결국 아기띠를 또 하나 꺼낸 후 두 개를 연결한다. 앞 뒤로 한 명씩. 미국에서 생산된 쌍둥이 아기띠다. 합쳐서 17kg를 안고 엎고 몸을 살랑살랑 흔든다.     


그나마 빨리 잠든 하나를 내려놓고 하늘이와 잠씨름을 한다. 눈이 감길 듯 말 듯. 겨우 잠들었다 싶어서 내려놓으면 어김없이 울음 발사. 또다시 아기띠로 재우다가 내려놓기를 반복. 운이 좋으면 밤 12시에 육퇴, 운이 나쁘면 새벽 3시쯤 육퇴. 손목도 허리도 어깨도 너무 아픈데 마음은 더 그러했다. 단 한순간도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없어서 화가 났다. 아이가 자면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쇼핑도 하고 싶은데 그런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내일의 육아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화를 낼 수 없어 대부분 남편에게 화를 냈고 두 번 정도는 애꿎은 아기띠를 바닥에 퍽퍽 내려쳤다. 도대체 왜! 울부짖으며 아기띠를 내리치는 나를 보며 놀란 하늘이가 나보다 더 크게 울었다.     


낮이라고 별반 다른 것은 아니었다. 낮에는 잘 자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구강기 아이는 입으로 사물을 탐색하기 때문에 자주 갖고 노는 장난감을 소독했다. 기저귀도 주문하고 육아에 필요한 물품들도 주문했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한지 공부도 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이 있다면 도대체 왜 하늘이가 잠에 들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책을 읽고 유튜브 강의를 듣고 인터넷을 헤매었다.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는데 나는 단톡방에서 화젯거리가  핫한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도, 그즈음 대두된 차기 대선후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몇명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지 못한 노동현장에서 죽어가는지, 태풍이  고향을 얼마만큼 강타했는지 몰랐다. 매일 가던 아이스크림집 옆에 살던 길고양이들이 언제 사라졌는지도 단골 김밥집이 언제부터 휴업이었는지도 몰랐다.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같은데  세상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일상이 고립이다.  최악은, 육아의 끝이 어디인지 도저히   없다는 것이었다. 쌍둥이맘 카페에  처지를 한탄하는 글을 올리면 올라오는 답글의  . 시간이 약이에요. 도대체 약이 되는  시간은 언제 오는 걸까?     


나는 몰랐다. 육아가 이런 것일 줄은. SNS에는 아가들 예쁜 모습만 올라오길래 마냥 예쁠 줄만 알았다. 낳고 키우다 보면 알아서 자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의 아이는 빨리 자라는 것 같은데 내 아이는 언제쯤 커서 혼자 빠진 쪽쪽이를 찾아 물고 스스로 잠에 들 수 있을까? 임신과 출산만 엄마의 뼈를 갈아 넣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양육은 더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이유가 단지 쌍둥이를 키우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많은 책을 왜 읽었을까. 영어공부는 왜 했으며 뺀질거리며 세계여행은 왜 다녔을까. 잠자지 않고 우는 하늘이를 달래기에 무용지물인 것들.      


육아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내가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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