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1학년의 생각
수능을 마치고, 아니 망치고, 그동안의 시간이 허탈하게만 느껴지는 침체된 한 달을 보냈다. 지원서를 쓰고 나서는 모든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며 앞으로는 빨리 사회에 나가 구체적인 행동 속에서 무언가를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가볍게 먹었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가볍게 내려놓는 순간 막연한 미래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나를 뒤로 끌어당기는 닻과 같은 과거를 끊어내자 모래폭풍 같은 미래가 나를 맞바람으로 밀어냈다. 대학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또 나라는 사람은 어떤 과정을 즐겁게 견딜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맞바람을 맞아가며 나름대로 고민하며 살아가던 차에 학교에서 멋대로 배정해준 전공탐색세미나에서 얻어간 것이 하나 있다면—학과마다의 차이는 있겠으나—대학은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어떠한 토대를 마련하는 곳이며 구체적인 업무는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야 배운다는 것이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을 증명하는 소소한 자격증도 딸 수 있겠고 회계에 관한 이해를 증명하는 전문적인 자격증을 딸 수도 있겠으나 결국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본격적인 행위는 회사에서 가르친다는 생각 아래서 취업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는 한편 그렇다면 나라는 인간은 대학에서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대학은 나에게 어떤 공간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은 사회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거치는 곳이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사회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결국 사회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으며 자신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하며, 대학은 그런 사람이 되기 직전에 거치는 곳이다. 사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을 다니는 일이 과연 그만한 금전적 시간적 그리고 정신적 노력의 가치가 있는 일인가'라는 회의감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대학이 제공하는 느슨한 환경이 대학을 다닐 만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캠퍼스의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공부를 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비슷하게 막연한 시기를 보내며 탐색하고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은 비록 추상적일지라도 혼자 방황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구속된 소속감 없이 안정감을 주는 소중한 자원이다. 이 안정감 속에서 우리는 각자에 맞는 방식으로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대학은 방황하는 곳이다, 라는 것이 나의 두 번째 생각이다. 전공을 정하고 대학에 들어오는 일이 조금은 우습다. 고등학생이 자신이 어떤 일에 흥미를 갖고 잘 해낼 수 있을지를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아무리 진로 교육을 받아도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대학생이 되며 획득한 나름의 자율성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를 고민하는데 투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생의 자율성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다른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데서 온다. 전공이 아닌 수업을 듣거나, 공모전 같은 대외활동에 참여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인턴을 하거나, 단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대략 한 학기 단위로 진행되는 자신만의 활동들은 밖에서 보기에는 뜬금없고 쓸데없는 일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나의 흥미와 열정을 세상에 펼쳐내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흥미와 열정이 세상과 부딪히는 경험하고 나서야 그 흥미와 열정의 이미지가 얼마나 진실 된 것인지, 그것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대학생 중에는 본인의 전공에 이미 만족하는 사람도, 취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적성을 찾아가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좋다. 하지만 대학은 분명 시도하기 좋은 곳이며 새로운 시도는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인이 전에 자신에 대한 견해와 자신에 관한 정보를 모아갈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우는 일은 어쩌면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도 중요할지 모른다. 그것은 인생에 관한 문제이니까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생은 방황할 수 있고 방황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을 갖고 삼십대가 되고 싶지 않다. 늦은 때는 없다지만 삼십대를 넘어서 대학생처럼 자유롭게 방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련 없이 방황했다’ 라며 훗날 대학생활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