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계는 단지 사물들이 배열된 공간일까? 우린 한낱 우주의 먼지에 불과할까?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할까?
물리학의 시각으로 보면 분명 그러하다. 모든 생명과 의미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으스대는 개미의 환상만도 못한 것으로 졸아든다. 우주를 배경으로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보잘것없어지고,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념이고, 하나의 특별한 관점일 뿐이다. 우주는 자연과학의 '대상 영역(공통의 규칙이 성립하는 대상들을 포함하는 영역)'으로, 이 영역을 탐구하는 건 과학자들의 몫이다.
우주가 무한히 크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이 보잘것없어지지는 않는다. 자연과학의 영역에선 의미를 찾을 수 없는게 당연하다. 그 누구도 괴테의 <파우스트>를 두고 물리학적으로 연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생'의 의미는 우주에서 찾아볼 수 없기에, 우린 다른 적절한 대상 영역을 선택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조던 피터슨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객관적 세계로서의 현실보다는 소설이나 영화에 더 가깝다'라고 말한다. 세계에는 경험할 수 있는 사물들과 사건들은 분명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를 그런 식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거실의 소파와 식탁과 컵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대개 '심리적으로' 인지한다. 소파가 '있다'고 인식하기보단 소파가 얼마나 편하고 빨리 누워서 자고싶은지를 생각할 것이다. 소파에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고양이와 함께한 시간들이,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
종교심리학을 연구하는 조던 피터슨은 성경과 신화는 물론이고 해리포터와 피터팬을 언급하는 것도 그러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은 삶의 중요한 의미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지 않더라도 그가 성경을 언급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이야기들이 우리 삶의 진리들을, 단순한 우화에서 발견할 수 없는 교훈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종교는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변 일들에 대한 질서를 발견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종교는 우리 자신을 포섭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운명 너머에 있는 심오한 역사 속에 있다고 말하며 이를 풀어볼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다독인다(참고: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의미를 추구해야 할까? 의미는 삶의 나쁜 태도와 감정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우린 저마다 의미를 찾아가고, 그것에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한다. 삶의 나쁜 태도와 감정들, 그러니까 심리적인 문제는 의미를 찾는데 실패해서 발생했다는 것이 피터슨의 주된 관점인 것 같다. 심리 문제에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고 그의 방식은 세상과 자신을 직시하고 더 높은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트라우마 등 과거의 사건에서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의미를 찾고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질서와 혼돈 사이의 좁고 곧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혼돈은 질서의 업데이트다. 질서는 우리 삶에 가치를 세우고 의미를 만든다. 우리는 사회의 신념체계를 공유하며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한 후, 목표를 세우고, 더 나아짐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것이 질서가 필요한 이유다. 질서는 수많은 삶의 영역 사이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지 가리켜줄 체계가 된다. 질서가 없다면 우린 충돌하는 가치 체계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희망 없는 허무주의자가 될 것이다. 이에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는 과도한 혼돈의 결과를 바로잡는 것에 무게를 둔다.
반면 <질서 너머>에서는 그렇게 세운 질서를 어떻게 업데이트할지를 이야기한다. 인생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질서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한때 세상을 잘 조직하던 질서라도, 그 자체에 내재된 한계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점이 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린 질서를 내면화하고 따르면서도, 때로는 질서 너머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질서 속에서는 의미를 실현할 수 있지만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가능성'의 영역인 질서 너머로 발을 내디뎌야 하는 것이다.
규칙을 충실히 따라서 빛나는 본보기가 될 수 있을 때는 규칙을 따르라. 하지만 그 규칙이 큰 걸림돌이 되어 그 핵심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게 할 때는 규칙을 깨뜨려라.
법칙 1: 기존 제도나 창의적 변화를 함부로 깎아내리지 마라
<해리포터> 시리즈는 사회질서에 복종하는 것이 최고의 도덕적 가치를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질서를 벗어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질서 너머>의 12가지 법칙들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그래서 우린 '살던 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실패가 두려워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안갯속에 묻어둔다. 목표를 세우고 겨냥해도 그걸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마당에 목표 자체를 세우지를 않는 것이다. 혹은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양심의 요구를 무시한 채 어리석고 혐오스러운 일을 억지로 한다.
이 세상에 나쁜 결정이 차고 넘친다고 한탄하며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과거의 공포를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외면한다. 결혼에 구속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탈출 가능성을 남겨두고, 문제해결을 위한 부담스럽고 힘겨운 대화를 피한다.
혹은 질서의 규칙 속에서 느끼고 살아가는 게 편하다는 이유로 살던 대로 살아간다. 질서의 안락함에 빠질 때, 우리는 누군가 해야만 하지만 방치된 일을 보면 짜증나고 분노하고 남 탓을 한다. 직면한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축소하고 그럴듯한 악당을 내세워서 공격한다. 아름다움이 미술관의 액자 밖으로 뻗어나와 익숙한 모든 것을 어지럽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무섭고 나쁜 일을 만났을 때 뒷짐 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보물을 차지하고 싶다면, 인생을 걸고 질서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은 영원한 포식자가 지키는 영원한 보물창고다. 위험과 맞설 때 우리는 예외적으로 높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보물을 차지하고 싶지 않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부정적인 현실에 맞설 힘과 지혜를 갖춰야 한다. 전작에서 에덴동산의 뱀을 통해 이야기하듯이 혼돈은 절대로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던 피터슨은 자기계발서 작가가 아니라 심리학자다. 그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왜 우리가 규칙을 지키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좋은 감정을 느끼는지 이야기한다. 어렵더라도 조금만 노력을 들인다면 <질서 너머>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에게는 인생의 여러 측면에서 '치고 올라가는' 태도를 가르쳐줬다.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모험을 할 때, 비록 실패할지라도 더 발전하고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걸 명료하게 깨달았다. 12가지 법칙들 자체보다도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묘사들이 나의 세계관을 바꿨는데, 그중 나에게 가치있게 다가온 법칙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법칙 4]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인식하라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이 인상적이다. 각자에게 가능한 최고의 목표는 우리 삶의 고통과 증오를 가라앉힌다고 말한다. 인생을 올바르게 살겠다고, 선한 것에 목표를 두고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을 바라보겠다고 생각을 할 때, 우리의 모든 부분은 한 방향을 바라본다고, 결의가 허무주의와 절망을 제압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은 결의가 부족해서 나타난다는 생각이 든다. 벽돌공이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면 대성당은 결코 완성될 수 없듯이, 높은 목표와 굳은 결의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하고, 내 앞에 놓인 내일, 5년, 10년 뒤의 나 자신을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법칙 7] 최소한 한 가지 일에 최대한 파고들고, 그 결과를 지켜보라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왜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했을까? 왜 모든 즐거움을 잃고 운동하던 습관도 다 그만두고 심하게 마음이 울적했을까? 삼촌을 죽일지 말지를 너무 오래 고민했기 때문이다.
허술하게 통합된 사람은 고난에 직면할 때 마음을 다잡지 못한다. 그는 가장 높은 차원의 심리적 통합성을 상실한 사람, 다양한 부분 인격의 균형과 조화가 깨져버려 온화함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 내적 통일성이 부족하면 고통이 증가하고 불안이 커지고 동기가 시들고 즐거움이 사라지며, 그 결과 우유부단해지고 뭐든 확신하지 못한다. -<질서 너머>
신경과학적으로도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은 불안과 걱정을 촉발한다. <우울할 땐 뇌과학>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을수록 걱정해야 할 게 더 많아지고, 더 불쾌해진다고 말한다. 모든게 불확실하면 편도체의 반응성이 아주 커진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택의 폭을 좁히고 가능한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인생의 차원에서는 하나의 확실한 목표를 바라보며 자신을 조직할 때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법칙 7에서 중요한 문장들을 모아봤다. 목표를 세우고 겨냥하라. 세상에는 우리가 모든 걸 잊고 전념할 만한 일이 많다. 최악의 결정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한 가지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당신은 변할 것이다. 여기엔 희생, 노력, 집중이 요구된다. 영어로 'Pull yourself together'라는 말이 있듯이,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산산조각나 흩어진 정신을 서로 끌어당겨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사회와 합일을 이루는 '통일된 인격'이 되면 규율 또는 문명을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존재가 된다.
권한은 단순히 기존 체제에 도전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일단 기존 체제 내에서 지위를 확보한 후에, 기존 체제에 도전하고 뒤엎어야 얻어진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영화감독
고등학생 시절에 공부는 안하고 '교육제도의 문제'나 '사회제도'를 비판하면서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20대 즈음에는 다들 이런 냉소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는데, 일단은 '실현가능한' 목표에 전념하고, 사회를 바꾸려는 마음은 아무래도 사회가 결정한 규칙에 복종한 후에나 가져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실패는 결의의 부족, 겉만 번지르르한 의미 없는 합리화, 책임 거부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곁들이며
<질서 너머>와 함께 더 구체적인 실천 전략들을 원하거나, 애초에 신화를 곁들인 길고 긴 심리학 이야기를 굳이 읽고싶지 않거나, 보다 체계적으로 쓰인 내용을 원한다면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추천한다. 두 책 모두 목표를 세우고, 책임을 지거나(take responsibility; 조던 피터슨) 결심을 하고(determination; 레이 달리오), 질서 너머로 나아가거나(beyond order) 모험을 할 때(adventure), 더 큰 보상을 얻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구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다르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가장 멋지게 살기 위한 태도를 본질적으로는 동일하게 제시한다.
https://youtu.be/9Ps0He1ey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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