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회 준비 중
검은색과 흰건반, 피아노를 보면 배웠든 그렇지 않았든 누구든 한 번씩 꼭 눌러보고 싶은 악기. 어릴 적 그 소리가 너무 좋아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엄마를 조르고 졸랐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터라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한 번 시작한 피아노는 초등학교를 마칠 즈음까지 계속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피아노를 연주할 기회는 점점 줄었고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할아버지께 피아노를 갖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던 노력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교육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쫄쫄이 바지 입고 무용하기, 축구하기, 잡채 만들기, 개울에 사는 곤충 잡아 관찰하기, 자유형 하기 등등 초등 교사가 되려는 수많은 배움 중에 피아노로 동요 치며 노래 부르기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생 때 배워두었던 감각을 되살려 피아노를 친 덕분에 평가를 무사히 통과했고, 교직에 나와서 쉬운 악보는 전자피아노로 반주할 수 있을 정도의 감은 유지하고 있었다.
두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은 매 해 공연장을 대관하여 연주회를 연다. 아이의 수준에 맞게 솔로곡과 둘이 함께 하는 듀엣곡을 연주한다.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는 아이를 보며 왜 그리 행복하던지.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아이는 또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같았다.
올여름 끝무렵 피아노학원 밴드 공지에 함께 듀엣곡을 연주할 가족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그 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마음속 어른아이가 똑똑, 같이 피아노 치자고 간지럽혔다. 며칠 고민 끝에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악보를 받았다.
막상 악보를 받고 피아노 앞에 앉으니 맙소사...... 왼손으로 쳐야 하는 낮은음자리표 음계가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오선지 어느 위치가 도인지 솔인지 바로 알아야 하는데 손가락으로 덧셈하듯 하나하나 오선지를 세어 가며 음표 위치를 찾아가다 한숨이 나왔다. 또 괜한 욕심을 부렸구나......
그렇게 며칠을 악보를 보면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솔파미레도 세어가며 겨우 계이름을 익혔다. 계이름을 익히고 나자 이제 화음이 문제. 두, 세 개의 음표를 한 번에 눌러 쳐야 하는데 엉뚱한 건반을 누르기 일쑤고 다 익혔다고 생각했던 계이름도 자꾸만 틀려서 다시금 도레미파솔라시도 중얼거리며 다시 치기를 반복했다.
학생들도 모두 하교하고 선생님들도 모두 퇴근한 빈 학교 강당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다 어둑해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퇴근을 하곤 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체육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실기가 있는 것들은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자세로 살아왔으니 뭐 이것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어느 정도 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게 되자 학원에서 아이와 함께 맞춰보자고 연락이 왔다. 작은 아이와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혹시 틀릴까 봐 긴장하며 연주를 했더니 등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선생님께서는 용기를 주려 하시는지 너무 잘한다며 칭찬을 하시곤 아이에게
"00야, 엄마가 피아노 잘 쳐서 너무 좋겠다.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하겠네."
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긴장했던 어깨가 내려왔다.
그렇게 첫 레슨을 시작으로 세 번의 레슨을 마치고 오늘 네 번째 레슨을 받으러 아이들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에 가야 한다. 늦은 밤, 아이들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에 가는 오늘의 일들이 아이들 기억 속에 따스히 남아 있기를 바라며......
토요일 6시에 아이 둘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악보를 옆에 끼고 등장과 퇴장하는 연습까지 덧붙여서.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어머니, 떨리진 않으시죠?"
'무슨 말씀을...... 무대에서 하얀 건반처럼 새하얗게 생각이 안 날까 봐 이렇게 연습을 하는 건데.......'
다음주에 있을 연주회 후기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