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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 Mar 04. 2020

하고 싶은 나


 올해의 계획으로는 ‘요가 배우기’가 있었고, 내년 계획에는 ‘방송댄스 배우기’가 내정되어 있다. ‘영어 배우기’는 매달 빠지지 않는 단골 계획이다. 성취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내 삶은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배움’으로써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나’라는 타이틀이다. 매일 새벽 요가를 하며 평정을 찾는 멋진 나!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열정적인 나! 꾸준한 영어공부로 회화 능력을 습득한 성실한 나!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뀔 때마다 다짐하는 모든 계획이 그러하듯, 내 계획도 자주 실패로 돌아간다. (‘자주’보다 ‘거의’라는 말이 더 어울릴법하다) 실패한 자리에는 누가 남는가. 바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내가 남는다. 매일 요가를 하고 싶은 나, 춤을 잘 추고 싶은 나, 영어로 쏼라쏼라 자유롭게 말하고 싶은 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 리즈는 자기 자신을 ‘길건너다attraversiamo’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고 싶다 wannabe’ 로 정의할 수 있다.

 

 ‘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웃기는 구석이 있다. 미래의 행위를 소망하느라 현재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예를 들어 내가 ‘글을 쓰고 싶다’라고 말할 때, 나는 이런 미래를 상정한다. ‘볕이 쏟아지는 멋진 원목 책상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글을 쓰는 나’. 반면, 현실의 나는 십중팔구 불안과 무기력함, 불성실함의 늪에 빠져 스마트폰을 붙잡고 시시껄렁한 동영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ms. wannabe는 이렇게 탄생한다.


글을 쓰는 멋진 나!!! (또르르)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을 반증하듯, 명상에서는 늘 ‘현재’를 인식할 것을 강조한다. 밥을 먹을 때는 음식을 씹고, 맛보고, 소화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옳으며, 설거지를 할 때에는 설거지만, 걸을 때에는 걷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나처럼 설거지를 하면서 ‘이거 다하면 밥 먹고 산책가야지’ 라는 미래를 그려서는 대단히 곤란하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현실을 대신하는 순간, 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작가 김연수는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내게 현재란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 상태를 뜻해야만 한다. 방금 ’뜻해야만 한다‘고 쓴 것에 주목하시길. 그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암시하는 서술어가 되겠다. ... 소설가에게 현재란 지금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 그러니까 지금 뭔가를 쓰고 있다면, 그는 소설가다. 같은 말이지만, 뉘앙스는 좀 다르다.

 

 오늘도 침대에 누워 뭉개고 있는 ms. wannabe를 일으켜 세운다. 차근차근 다독여본다.  “현실을 배제해서는 안 돼.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상태’여야 해. 요가를 하고 있을 때에만 ‘요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 글을 쓰고 있을 때에만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어.” 

 wannabe를 버려야만 진짜 be가 된다. 지금부터 목표는 ‘하고 싶은 마음 버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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