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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 사람 Apr 06. 2024

알 수 없는 인생

3분에 읽는 초단편 반전 소설

 "여보,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당신 덕분에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렇게 여유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 거, 진짜 고맙고 사랑해."


 결혼 10주년 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남편의 말이 이어졌다.

 "한동안은 당신이 나를 버리고 떠날까 봐 걱정 많이 했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사업을 말아먹었는데 어떤 여자가 그걸 참겠어. 특히나 당신처럼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공포스러워하던 사람이..."


 그렇다. 결혼 전 그녀가 남편감으로 내세운 가장 큰 조건은, 그녀보다 가난하지 않은 남자였다. 그녀는 늘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보다 부유한 건 상관없는데 그 반대의 상황은 헤쳐나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남자의 외모가 너무 뛰어나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잘생긴 남자가 언제까지 자기만 바라봐줄지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다지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얼굴에 경제적으로 윤택한 그의 청혼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남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더니 연거푸 망하면서 전 재산을 날렸다.

 '이렇게 빈털터리가 될 줄 알았으면 그냥 키 크고 잘생겼던 첫사랑이랑 결혼할 것을. 서로 잘 맞았지만 너무나 가난했던 두 번째 사랑이랑 결혼했어도 이보단 나았겠어. '

 회사가 부도나고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처음 얼마 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고, 그 후엔 악착같이 돈을 벌고 모으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살림은 피고 예전보다 더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고맙긴... 사실 처음엔 당신 원망도 많이 했고 가출을 할까 이혼을 할까 고민도 많이 했었어.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이 소중했나 봐. 어느 순간부터 당신이 밉지 않고 안쓰럽더라. 나는 가난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그게 되더라고. 후훗~"

 담담하게 말하며 피식 웃는 아내를 바라보며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착한 아내를 그동안 마음고생시키며 살았다니,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들었다.


 "여보, 우리 앞으로는 더더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자. 내가 진짜 잘할게."

 "아니,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당신과 살면서 내가 깨달은 건 내가 생각보다 강하고 희생적인 사람이라는 거야. 별로 끌리지 않던 당신과 살면서도 이 고생을 견뎠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세상 두렵고 어려울 게 뭐가 있겠어. 그러니까 이제 나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떠날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내의 말에 그는 정신이 아늑해졌다. 실성한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혼잣말인 듯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애들도 있는데 떠난다니..."

 그녀는 식사를 끝내지도 않은 채 일어서며 싸늘하게 말했다.

 "누가 할 소리를!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언제까지 이서진의 존재를 모를 줄 알았는데? 이제 좀 돈 버나 싶었더니 바람을 피워?"

 미경을 바라보는 정민의 눈과 입은 벌어질 만큼 벌어져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한동안 멈춰있었다.


'망했다!' 이번에 망한 건 그의 회사가 아닌 그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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