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J크로닌워너비 May 31. 2023

고를 배웅하며

의료 현장에서 쓴 시 (2)

당신은 한 가장의 아버지

병마를 굴리는 시시포스

DNR이라는 세 글자는

당신의 고苦를 짐작하게 한다


어느 날 새벽 울려온 전화

환자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한걸음에 계단을 휘어 올라갔지만

힘겹게 내린 선택을 존중했고

그렇게 당신은 고故가 되었다


조금 후에 도착한 당신의 가족들

‘잘 가’

‘사랑해 아빠’

‘고생 많았어’


차례차례 인사를 하고는

이제 되었다 담담히 말하며

울음을 참던 그들의 모습에

익숙해지지 않는 북받침을 참는다


이젠 고苦가 없는 고인故人을 확인한다

더는 맥동 않는 심장과 혈관

숨이 드나들지 않는 고요한 흉곽

허공에 고정된 채 미동 없는 눈동자

혈색이 빠져 창백해진 피부


살짝 벌린 입은

무언가를 말하려 했음이었을까

마지막 고苦를 내뱉는 한숨이었을까

어쩌면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조용히 告하진 않았을까


차가워진 눈꺼풀을 닫으며 나직이 고告한다

환자분 오전 3시 40분에 사망하셨습니


고를 기억하는 이들이

흩어진 신의 마지막 호흡을 배웅하는 것을 보며

묵묵히 손을 움직인다


묵묵히 고를 배웅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그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