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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Nov 28. 2019

<10화> 방송댄스 실력의 4단계

실력에 따라 시선은 어떻게 변하는가

초보 주제에 뭘 안다고. 하지만 얘기하려는 것은 춤 실력 자체가 아니다. 실력이 성숙함에 따라 "시선"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1단계 : 선생님의 뒤꽁무니만 바라봐


학원에 처음 발을 들이면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동작을 흉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앞에서 동작을 쪼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보여주고 반복해주는데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에 힘을 주고 관절을 꺾어가며 쉴 틈 없이 자세를 바꾸는 것이 어디 쉬운가. 뇌도 몸의 각 부위에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라'라고 명령 내리기에만도 너무 바빠서, 외우는 것까진 여력이 없는 것 같다.


초반에는 정말 선생님 뒷모습을 좇는 것만도 정신없어서 다른 건 아무것도 입력이 안된다. 다른 수강생들이 추는 모습도, 노래 가사가 어떻게 되는지도. 웬만큼 반복해서 익숙해진 것 같으면 선생님이 학생들끼리 해보라 하는데, 속절없이 무너지곤 한다. 난 다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외웠지만 그냥 박자 맞추려고 선생님을 곁눈질하기만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웬걸, 선생님이 없으면 기억도 없다.


2단계 : 거울 속의 나를 감상하며


지지리도 안 외워지던 안무가, 계속 배우다 보면 이미 해본 '동작 모듈'의 새로운 배열임을 깨달아서 외우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진다. 처음 골반을 좌우로 움직이는 게 어려운 거지, 한번 익숙해지면 뇌가 몸에 '골반 왼오(왼쪽 오른쪽)'라고만 명령하면 된다. '왼쪽 옆구리 근육을 땡겨서-왼쪽 엉덩이를 올려-다시 힘 빼서 똑바로 섰다가-다음은 오른쪽 옆구리 근육을 땡겨 올려서-오른쪽 엉덩이를 위쪽으로 들어 올려'라고 일일이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웬만큼 반복하면 외워지리니' 하는 확신과 함께 살짝 여유가 생긴다.


나도 웬만큼 추는 것 같은 자뻑에 빠져 거울을 응시하며 출 수도 있게 된다. 1단계에선 어림도 없다. 거울 속 나를 보는 순간 신경이 분산돼 외운 안무가 증발해버린다. 나를 향하던 초점을 매직아이처럼 멍하게 맞추면, 다른 수강생들도 보인다. 누구는 원을 크게 그리네, 누구는 저 동작에서 좀 빠르네, 하는 것들까지도. 이젠 집에서 혼자 복습도 하고 스스로 자세 교정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확 배가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3단계: 카메라 렌즈의 눈싸움


춤 연습에는 거울이 빠질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거울에 심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초짜가 선생님 없으면 다 까먹어버리듯이, 혼자 연습하는 단계에 들어왔어도 거울이 없으면 갑자기 장님이 된 기분이 든다. 댄스학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수업 영상을 찍는데, 모두 그냥 거울을 보고 춘다. 카메라를 씹어 먹는 것은 선생님뿐이다. 사실 선생님이 솔로 가수, 수강생들은 백댄서 분위기로 찍으니까 선생님이 카메라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것이 맞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표정 없는 까만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출 깜냥이 안된다. 게다가 카메라를 본다는 것은 그냥 '본다'가 아니라 표정연기까지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영상녹화 심사로 등급을 받는 부분이 나온다. 스스로 카메라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그 앞에서 새로 배운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그런데 꽤 많은 연습생들이-하루종일 연습했을 텐데도- 카메라 앞에서 가사와 안무를 까먹기 일쑤다. 특히 연습생 기간이 짧은 아이들이 그렇다. 거울 앞에서만 연습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절실한 마음으로 연습했을 텐데도, 블랙홀 같은 검고 무표정한 렌즈를 바라보면서 추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데뷔를 하고 무대에 서면 여러 방송 카메라 중 불이 들어오는 것을 찾아 시선을 맞춰야 하니 얼마나 어려울까. 그러니 자다가 툭 건드려도 가사와 안무가 자동으로 나올 만큼 반복해서 익히는 것이다. 그래야 연습실 환경과는 여러 조건이 다른 낯선 무대에서, 불이 들어오는 카메라를 빨리 찾아 시선을 맞추면서 표정 연기까지 할 여력이 나오니까 말이다.


4단계: 무대에서 관객들과 교감하는 경지


영상카메라 앞에서 표정연기까지 멋지게 해냈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는 차원이 또 다르다. kpop과 함께 자란 10대들은 학교 축제에서, 또 댄스동아리를 통해 외부 공연에 나가서도 긴장 않고 곧잘 추는 것도 같다. 그런데 잘 보면 대부분 안무를 잘 맞추는데 신경 쓰느라, 또 관객 표정을 봤다간 호의적이든 냉소적이든 집중력을 떨어뜨릴까 봐 잘 바라보지 못한다. 표정도, 이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간혹 무대 분위기와 맞는 표정(카리스마 있게 또는 귀엽거나 섹시하게)으로 마치 날 보며 추는 것 같이 관객의 시선을 흡입하는 아이들도 있다. 확실히, 그런 무대는 춤 자체의 스킬은 엇비슷해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시선은 마음의 통로인 것이다. 시선이 맞닿아야 교감이 이루어진다. 대중음악의 퍼포먼스는 자신에게 깊이 몰입하는 현대무용 같은 순수예술의 그것과는 다르다.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무대는 깊은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그런데 이건 연습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지 않은가. 신인일 때는 긴장해서 시선을 관객에게 제대로 주지 못하고 받기도 어렵다.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쳤더라도 관객과 호흡하고 애드립까지 하려면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야 하는 것 같다.

 BTS 팬덤 '아미'인 내가 아주 사랑하는 영상이 있다. 2017년 MBC 가요대제전 <고민보다 Go> 퍼포먼스(누르면 링크 연결됨)다. 아미들 앞에서 이 곡을 부르면서, 멤버들은 각자 숨겨뒀던 하트를 꺼내거나 중간에 카메라가 자신을 안 비출 때 얼른 붙여놓는다. 가방에서, 손바닥에서, 어느 순간 안경에 붙어있다가, 마지막에 신발 바닥에서 등장하는 하트 퍼포먼스는 정말 최고의 재미를 선사했다. 이 곡은 원래부터 개구지면서 능청스러운 표정연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바쁘게 춤추고 노래하는 가운데 자기 순서에 맞게 숨겨둔 하트를 '여유 있어 보이게' 꺼내려면 얼마나 노련해야 할까. 누구의 하트가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날지 기대감에 시선이 최고로 집중된 가운데에서.


관객과 호흡 잘하기로 유명한 마마무는 또 어떻고. 전에는 마마무가 워낙 보컬로 유명해서 안무에는 비중이 별로 없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마무 안무는 걸그룹들 중에서도 상당히 세다. 가창력도 시원하게 뽐내고 빡센 안무도 하고, 게다가 중간중간 카리스마 있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씹어 먹으면서 관객과 내내 호흡하고 애드립까지 하는 마마무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디쯤인가 하면.... 이제 2단계에 들어선 정도? 거울 속 내 모습도 감상하고 거울에 비친 다른 수강생들 모습도 조금씩 훔쳐보면서도 안무를 안 까먹을 수 있는. 물론 복습을 많~이 해갔다는 전제 하에서! 진짜, 느려서 그렇지 조금씩 늘고 있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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