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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Dec 10. 2019

<11화> 아드레날린 뿜뿜, 영상촬영

Done is better than perfect

나이를 먹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심장박동이 거칠게 빨라지고 피가 뜨겁게 솟을 일이 별로 없어졌다. 일할 때는 여전히 바짝 긴장하는 순간이 있지만, 그건 희열과 쌍을 이룬 것이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다. 긴장이 풀리면 안도하고 침착해질 뿐이지. 


그런데 요즘 나는 내내 긴장감 속에 산다. 그놈의 댄스 수업영상 때문이다. 


댄스학원에서는 한 주 한 곡의 안무를 익히고 나면 영상을 찍어 유튜브카카오톡채널에 올린다. 전에는 아주 가끔만 해도 되어서 학생들이 아주 잘 따라오는 곡만 영상을 찍었는데, 요즘은 학원 운영팀의 압박 떄문에 엄청 자주 찍는다.  입시의 계절이라, 입시반 수업은 거의 개인지도로 업로드할 영상이 없으니 취미반에 압력이 들어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얼굴이 팔리는 일이라,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전 안 찍을래요." 하면 그뿐이다. 안무 숙지가 안 됐는데 영상에 나올 수도 없는 법이고. 실제로 버벅이며 안무를 찍었는데, '흔들리는 눈빛과 망설이는 동작' 때문에 학원 윗선에서 킬 돼서, 영상이 업로드 안 되기도 했다. 주 2회에 안무 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화,목반은 특히 어려움이 많다. 때로 수업 영상인데도 선생님 혼자 추는 영상도 있는데 학생들이 모두 못 하겠다고 고개를 짤짤 흔들어서 그렇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무조건 영상을 찍으려고 한다. 영상을 찍는다는 것은 실수 없이 안무 동작을 다 해낸다는 것이고, 그 미션을 달성할 동기부여로 그만한 것이 없어서이다. 업로드된 영상을 플레이해 보면 평소에는 선생님이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점검하는데 정신없어 몰랐던 많은 것들이 보인다. 다른 수강생들과 춤선이나 느낌의 차이도 보이고 단점이 무엇인지도. 


영상촬영은 1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꼴랑 두세 번 촬영해서 그중 잘 된 것을 선택한 다음, 앞 뒤 자르고 제목을 붙이는 등 아주 기본적인 편집만 해서 올린다. 세 번 촬영했다고 세 개를 엮어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중 가장 나은 영상을 선택해 통째로 올린다는 뜻이다. 내가 크게 실수하면 이만저만 민폐가 아니다. 그러니 부담이 엄청 크지만, 덕분에 집에서 수없이 연습을 하게 됐다.   

20대 선생님과 초6 수강생들과 촬영한 영상.  '나이 조합'이 너무 언밸런스하지 않느냐고 20대 수강생들에게 읍소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금세 안무를 외우는 10대들에게도 영상촬영은 부담이다. 촬영이 예고되면 학원에 일찍 나와 시험 앞둔 아이들처럼 흥분과 긴장으로 들뜬 모습으로 반복 연습한다. 아, 100m 달리기나 릴레이를 앞둔 느낌이 더 가깝겠다. 긴장과 기대로 학원으로 향하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아드레날린이 퐁퐁 샘솟으면서 피가 뜨거워진다. 그리고 무사히 촬영하고 나면 해냈다는 성취감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상쾌하고 기쁘다. 


안무 영상을 아예 안 찍는 수강생들도 있다. 주로 20대 성인 수강생들인데, 안무를 다 못 외웠다고 핑계를 대지만 수줍기도 하고 어딘가에 무작위로 공개될 자신의 얼굴과 모습에 민감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튜브 조회수는 끽해야 100회 전후다. 본 사람 대부분은 우리 자신이나 비슷한 처지의 다른 학원 수강생, 또는 댄스학원 관계자들일 것이고. 학원 이름을 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 학원은 지점이 많고 지점마다 다양한 수업이 있어서, 이 학원 채널 영상 리스트에서 금세 뒤로 쑥 밀린다. 잘 묻어 감출 수 있다는 뜻이다. 나도 여태까지 내 지인들에게 들키지 않는 데 성공하고 있다. 


처음 찍은 것을 보면 정말 안습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던 내 뒤태가 저리 헬이었구나. 분명 머리 감고 드라이하고 갔는데 왜 꼭 안 감고 자다 나온 것처럼 저 모양일까? 그 이후로 나는 댄스학원에 갈 때 제일 정성껏 화장과 머리와 옷을 점검한다. 


두 번째 찍은 것을 보니 안무 까먹을까 봐 초집중하느라 내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을 앙다문 채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군인인지 로봇인지.... 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려면 입술이 자연스레 벌어진 채로, 또 노래에 따라 미소를 짓거나 섹시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그 이후 입에 힘을 풀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았다. 그것까지 신경 쓸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가장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려면 가사를 따라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아서, 이젠 되도록 가사도 신경 쓴다. 사실 쉽지 않다. 매주 바뀌는 데다 요즘 가사는 너무 복잡하니까. 그렇지만 안무라는 것이 그 곡의 가사와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안무를 까먹지 않게 해주는 효과가 따라왔다.   

고개를 젖히는 동작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금니 꽉 깨문 저 표정이라니...(그 와중에 나의 초상권 보호 영상 캡처 실력 ㅋㅋ)


이후에도 새 영상 결과물을 볼 때마다 내 단점을 하나씩 파악해내고 실제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우스운 실력이지만 창피함을 무릅쓰고 영상촬영을 하지 않았으면 실력이 안 느는 걸 그냥 나이 탓으로 돌렸을 것이다.  


얼마 전에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를 담은 다큐멘터리 'Bring the Soul'를 보다가 역시!! 했다. 내 사랑 리더 RM이 다큐 제작진과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드러내는 인터뷰에서 자기가 요즘 "Done is better than perfect."라는 말을 가장 자주 되새긴다고 한 부분에서다. 크게 공감한다. 맞아 맞아. 정말 그래. 완벽한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너무 괴롭히거나 부끄러워하면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없으면 더 나아질 기회도 없다. 진짜 멋지게 잘하게 되면 그때,라고 하면 어느 세월에 그 그 순간이 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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