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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Dec 20. 2019

<12화> 방송댄스는 운동인가 아닌가?

뇌 운동에는 최곤데

주 3회 K-pop 댄스반에서 한 시간씩 수업을 받는다. 복잡한 안무를 외우려면 예습 복습도 필수다. 이를 포함하면 일주일에 최소 여덟 시간 이상을 춤연습에 투자한다.   


친구들은 말한다. "운동도 되고 좋겠다."

응, 아니야.

너무 단적으로 말해서 안됐지만, 방송댄스는 운동이 되지 못한다. 유산소 등을 통한 건강증진, 혹은 멋진 몸매 만드는데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K-pop 무대를 보면 아이돌들이 빠른 비트에 맞춰서 현란하게 무대를 누비며 거침없이 온몸을 움직인다. 요즘 유행하는 방송 카메라 문법 중 하나가 "엔딩 포즈(곡이 끝났을 때 한 명을-혹은 한 명씩-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 이때 가수는 마지막 포즈를 유지한 채 인상적인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함)"인데, 이때 거칠게 숨을 몰아 쉬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패러디할 때 필수 요소로 등장한다. 정말 힘들겠다, 강도 높은 운동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근데, 아냐?


첫 번째 이유. 방송댄스란 무엇인가.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서 추는 춤이다. 한 마디로, 노래를 부르면서도 출 수 있도록 고안돼 있다. 숨이 너무 거칠어지면 노래를 할 수 없다. 8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는 거의 립싱크였기 때문에 안무가 별 문제가 안됐다. 그런데 점차 라이브로 해야 진짜, 라는 인식이 자리 잡자 안무도 거기에 따라 변화했다. 물론 미리 녹음된 부분과 라이브를 적절히 섞는 더블링이 많지만, 어쨌든 안무는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강렬하거나 화려해 보이면서도 숨은 덜 차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 같다. 숨이 덜 찬다는 것은 심박동이 덜 빨라진다는 것이고, 결국 유산소 운동이 덜 된다.


힘들어 보이는 안무와 실제로 힘든 안무는 다르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동작(한 다리를 뻗어 차면 더욱)은 바로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어서 힘들다. 파워풀하고 에너제틱한 안무를 좋아하는 보이그룹의 안무도, 예전에는 공중동작이 많았지만 최근으로 올수록 발은 거의 바닥에 붙어 있다. 

방탄소년단의 김성재 <말하자면(1995)> 커버무대(2016년 연말 MBC 가요대제전). 레전드 무대 중 하나인데, 방방 뛰는 안무로 가득 차 있다.(위의 링크를 누르면 김성재와의 비교무대를 볼 수 있다.) 방탄은 격렬한 칼군무로 명성을 높인 데다 20대 초반일 때인데도, 옛 선배들 안무가 훨씬 힘들다고 토로했었다.  


걸그룹 안무는 말할 것도 없다. 허리를 꺾고 강한 웨이브를 주고 팔은 쉴 새 없이 뻗었다 굽혔다 하지만,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동작은 거의 없다. 엔딩 포즈만 봐도 강도를 알 수 있다. 보이그룹은 땀을 뻘뻘 흘리지만 걸그룹은 숨은 몰아쉴지언정 얼굴에 굵은 땀이 흐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댄스학원 케이팝댄스반은 수강생이 거의 여자여서 그런지, 거의 걸그룹댄스를 커버한다. 


클래식 댄스(볼룸 댄스, 발레 등)나 스트릿 댄스(하우스, 걸리쉬, 팝핀, 왁킹 등)를 정식으로 추면 운동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방송댄스는 춤이 주인공이 아니다. 전체 퍼포먼스 구성요소 중 비중이 높은 한 부분일 뿐이다. 


두 번째 이유. '방송댄스를 추는 것'과 '방송댄스를 배우는 것'은 다른 얘기다. 방송댄스를 배운다는 것은 안무를 익힌다는 것이다. 일단 구분 동작을 선생님 따라 흉내 내고, 몇 개 동작을 묶어 반복해서 머리와 몸에 익히는 것이 수업의 반 이상이다. 수강생들이 얼추 따라올 때까지 수십 번 반복한 다음에야 음악의 본 속도에 맞춰본다. 중간에 수강생들이 헤매는 동작이 있으면 그 부분을 다시 반복 연습한다. 한 시간 내내 수업해도 정작 운동이 될 만한 속도와 강도로 움직이는 것은 몇 분 되지 않는다. 


안무를 다 외우고 나면? 계속 반복해 노래에 맞춰 추면 물론 힘들다. 하지만 한 곡에서 커버하는 분량은 1분~1분 30초 정도의 포인트 안무 구간만이다. 잠깐씩 쉬어가며 반복하면 힘들 것이 없다. 3분 이상 되는 전곡을 노래와 함께 추고, 때론 연달아 여러 곡을 선보이는 무대 위의 아이돌과는 사정이 다르다.


세 번째 이유. 운동이란 무엇인가. 

심장을 단련해서 오래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갖게 하든지(유산소 운동), 근육에 반복해서 부하를 줌으로써 강도와 양을 늘려주든지(근육 운동), 스트레칭을 통해 모든 관절이 부드럽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든지(유연성 운동) 해야 하는데, 방송 댄스는 그 어느 것도 충분치 않다. 


댄스 수업을 시작하면 일단 골고루 스트레칭을 하고, 간략하게 근력운동을 한다. 스쿼트, 윗몸일으키기, 플랭크 같은 것 말이다. 내가 갑자기 에이스가 되는 순간이다. 평소에 스피디하고 파워풀한(해 보이는) 동작도 잘하던 젊은 수강생들이 어찌 그리 낑낑대는지.


이런 강도는 우리 필라테스 수업에서는 장난이라고... 여기서 5분 하는 걸 한 시간 내내 한다고. (물론 나는 성에 안 차서 연강으로 한 시간 더 하지.) 나는 필라테스와 요가 등의 운동을 별도로 하고 있다. 하지만 춤을 배우기로 결심한 사람이 일반 운동까지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이지만, 춤도 운동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춤추는 아이돌들이 왜 운동을 따로 하겠는가. 건강과 외모에 도움이 된다고 검증된 동작을 반복해 수련하는 운동을 하지 않고, 가사 내용에 맞춰서 보기에 멋지게 구성했을 뿐인 안무만 하루 종일 연습한다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정리해 말하자면 방송댄스는 운동이 아니라 '흥'과 '간지'일뿐이다. 물론 무엇이든,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같은 춤도 영상 촬영을 하느라 진짜 온 정성을 다 해 추고 나면 그 1분 사이에 '다 불 살랐어...' 하며 힘이 쑥 빠지는 것을 보면, 하기 나름일 수도 있다. 


아참, 방송댄스는 다른 쪽으로 엄청 운동된다. 뇌 운동.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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