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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Aug 04. 2021

<21화> 나는야 고장난 로봇

Basic Level 2반에서의 3개월

부품과 모듈


작년에 마일리댄스 Basic Level 1반(12주 주 1회 과정)을 이수하고, 올해 초에 Level 2반(역시 3개월 과정)을 이수했다. 레벨 2는 레벨 1을 이수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 다른 데서 좀 췄다고 해도 레벨 2로 직행할 수 없다. 자주 안 해본 동작들은 초짜나 다름없이 못하기도 하고,  잘못된 습관이 든 동작은 교정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레벨 1에 있을 때, 댄스 강사 지망생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교습법'을 배우러 왔다고. 그도 얄짤없이 레벨 1부터 시작해야 했는데, 전반적인 춤 실력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춤의 제일 기본 단위로 쪼개서 시키니까 안 되는 동작이 많았다. 그걸 잡지 않으면 나중에 실제 빠르고 복잡한 안무에서 항상 은근슬쩍 넘어가게 되고, 춤 실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레벨 1과 레벨 2를 기계로 비유하자면 부품과 모듈이라 할 수 있다. 

몸의 한 부분씩만 움직이는 기본 동작(아이솔레이션, 웨이브, 기본 스텝 등)을 배우는 Level 1이 '부품'을 장착하는 단계, 상하체의 동작 두세 개를 엮어 춤 비슷한 몸짓을 만들어내는 Level 2는 부품을 조합해 '모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모듈을 엮어 나가면 안무가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레벨 2반을 N차 수강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차피 한 번 배웠다고 잘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이 반은 커리큘럼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선생님이 제시하는 조합이 달라서 항상 새롭기도 하다.   



탁월하게 고장난(?) 로봇


나는 어땠냐고. 

음.... 나는 생각했다. 그래, 혹시 어디서 고장난 로봇을 연기하라고 하면 난 자신 있어. 여기서 배운 걸 차례로 하면 돼. 에러 난 로봇 표현이 너무 탁월해!


유튜브 마일리 댄스 워크아웃 영상 중에서. 두아 리파의 Levitating.


말하자면 이것이다. 목 아이솔레이션과 턴아웃 스텝으로 전진하는 것을 결합한 것이다. 내 모습을 찍은 영상도 있지만 정말, 차마 올리질 못하겠다. 전체 영상을 보고 싶으면 여기로. 


레벨 1에서 배운 동작도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두 개를 엮으니까 엄훠 뇌의 명령이 팔다리에 전달되는 시간에 오차까지 생기네?!!! 부품 자체가 시원찮은데 그걸 엉성하게 결합한 모듈이 괜찮을 리 없었다. 


매주 스스로에게 실망해 기죽어 돌아오곤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습하고 애썼던 몇 개월 전의 나를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지금 안무반 수업을 받다 보면 그때 배웠던 동작들이 자주 나오는데, 희한하게도 그때는 잘 안 됐던 동작들이 원래 할 줄 알았던 것처럼 되는 것이 꽤 된다. 왜지? 왜 되지? 나의 무의식 저편에서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나?  

이 영상은 레벨 2 10주 차 때인가, 선생님이 수업 중에 즉흥적으로 만드신 루틴이다. 루틴은 복합 모듈이다. 모듈 여러 개를 연결해 구성한 짧은 연습용 안무라 이해하면 된다. 기술적인 것만 반복하면 지루할 수 있으니 모듈의 조합이 이렇게 춤이 될 수 있다는 걸 맛보기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연습해 보라고 이렇게 영상도 찍어 보내 주셨다. 얼마나 멋진가. 그리고 우리는 그날 얼마나 몸개그였나. 그때는 눈이 휙휙 돌아가고 머리가 과부하돼 쥐가 날 지경이었지만, 지금 보니 저렇게 간지나진 않아도 대충 비슷한 느낌은 낼 수 있다.



꾸준히 연습하면, 언젠가는 된다


나나 다른 수강생들이나 고장난 방식만 다른 채 제각기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마지막 수업에서 복합 웨이브 했던 때의 감동은 기억에 선명하다. 위 루틴 영상의 마지막 부분처럼 암 웨이브를 왼쪽 손에서 시작해 몸통 웨이브로 발까지 내려간 다음 다시 가슴까지 끌어올려 오른손끝으로 연결하고, 다음은 반대 방향으로 하는 T자형 웨이브를 아주 천천히 연습했는데, 여러 번 수업에서 반복했던 것이어서 그런지 우리 모두 잘 해냈다.


스무 명 가까운 수강생들이 모두 딱 맞춰 해내는 모습이 대형 거울로 비치는데, 칼군무를 봤을 때 같은 쾌감이 쫙 퍼졌다. 50대, 40대 장년층도 꽤 있었는데 그걸 해내다니. 꾸준히 연습하면, 언젠가는 된다. 언젠가는. 진짜로!!! 


매거진의 이전글 <20화>계속 춤추고 있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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