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만한 네가 우리 집에 왔다. 털이 먼지처럼 붙어있고 아직 초점이 맞지 않아서 어디를 보는지 모를 눈이 참 파랬어. 배고프다고 빽빽 우는 너를 안고 분유를 먹였다. 사람 아기처럼 배를 위로 향하게 안고 먹이면 안 된다고 해서 엉성하게 너를 들고 젖병을 물렸지. 방금 분유 한통을 해치우고 배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물풍선처럼 부풀어 있는데도 배고프다고 울면서 침대 시트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네가 안쓰러웠어. 먹이고 나면 등을 쓰다듬고 배를 마사지해서 트림을 시키고 올리브 오일을 항문에 묻혀 배변 유도를 했다. 그러고 나면 이내 화장실로 달려가서 볼일을 보고 모래를 조그마한 발로 차서 어설프게 덮는 모습이 참 귀엽더라. 바늘같이 얇은 발톱을 숨기지 못한 채 내 몸 위로 네가 기어오를 때마다 따끔거렸어.
너는 몇 개월이 지나 아주 장난기가 많은 원숭이 고양이가 된단다. 호기심이 많고, 놀이를 좋아하고, 자꾸 말을 거는 어린이 고양이로 살고 있어. 그뿐만이 아니야. 너는 어떤 고양이들이 좋아하기도 한다더라 하는 모든 음식을 좋아해. 버터, 요거트, 치즈, 아이스크림은 당연하고 빵도 먹고, 파스타도 먹고, 브로콜리, 양배추, 감자도 먹어. 자꾸 요리하고 있는 테이블에서 파스타 면발 하나, 브로콜리 하나를 훔쳐서 달아나. 의기양양하게 들고 가서 해치워.
네가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어미는 사라졌고, 너와 함께 세상에 나왔던 형제들은 죽었어. 며칠 앞서 출산한 다른 어미에게 너를 맡겨보려 했지만, 가끔 젖을 물리는 것까지만 허락할 뿐 너를 받아주지 않았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네가 사람들의 다리를 보며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 건, 아마 생존 본능이었을 거야. 아무리 같은 종이라 해도, 다른 어미가 배를 부르게 해 주기보단 저 커다란 다리들이 너에게 먹을 것을 줄 것 같았겠지.
네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유독 식탐이 많아서 사료를 잘 씹지 않고 그냥 넘겨버리고는 천천히 먹는 누나의 몫까지 탐내는 너를 보며, 혹시 어린 시절 짧은 기간이지만 배를 곪았기 때문은 아닐까 걱정해. 구겨진 부분 없이, 아픈 상처 없이 너를 키우고 싶었는데 그건 불가능한 영역인 건지 걱정투성이야.
차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발코니 테이블에 올라가 창 밖을 바라보는 너를 발견해. 우리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지만 우리는 그걸 반가움이라고 불러. 사랑이라고 불러.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고, 네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다 해주고 싶지만 몰라도 상관없기도 해. 어찌 되었든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나는 더듬어 네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고, 네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애쓸 거니까.
오랫동안 잘 지내냐는 질문에 줄곧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단 한순간도 행복한 적 없었던 것처럼 행복했던 기억이 휘발해 버렸거든. 버거워서 숨이 막히는 기분, 긴장되어 잔뜩 움츠러든 몸의 근육들, 꿈꿀 힘없는 무력한 마음이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데, 외면하고 잘 지낸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 사실 다들 별 뜻 없이 인사를 건넸을 텐데, 내가 부담을 준 건 아닌지 괜히 미안해지기도 했어. 솔직함을 내려놓고 “그냥 지내지 뭐.” 정도의 애매모호한 문장을 내뱉어 보려고 입 안에서 계속 굴리고 연습했어.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연습이 필요하지 않아. 네가 나에게 행복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거든. 어느 틈에 네가 다가와 보드라운 털이 내 얼굴에 닿을 때, 낮에 대자로 뻗어 잠들어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네 가슴팍을 바라볼 때, 단단하지 못한 갈비뼈 안에 있는 작은 심장이 끊임없이 파닥파닥거릴 때, 모든 순간 행복을 발견해. 행복은 찰나 라고 하는 말들을 부정할 근거를 찾았어. 네 작은 심장이 뛰면서 너의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면 난 네가 보여주는 행복이 얼마나 듬직하고 견고한 지 믿을 수밖에 없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