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가 집에 온지도 한 달이 넘었다. 미뤄두었던 중성화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 하루 전, 내일 벌어질 일을 짐작조차 못할 우유에게 맛있는 간식도 주고 열심히 놀아주었다. 며칠 동안 고생할 테니 지금 많이 먹고 즐기라는 마음이었다.
여전히 이동장을 보면 하악질을 하는 우유를 위해 특별히 수의사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서 마취를 해서 데려가기로 했다. 남편이 선생님을 모시러 간 사이 소파에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우유가 사뿐사뿐 걸어와서 내 무릎에 앉아 살포시 눈을 감았다. 초조한 마음을 숨 참 듯 멈추고 우유에게 집중하자, 골골송이라고 부르는 고양이들이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수술은 금방 끝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우유를 쓰다듬었다.
무릎냥이 우유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남편은 병원에 가서 마취를 할 예정이라는 폭탄선언을 하고 이동장을 청소하러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가뜩이나 음식에 진심인 애를 수술 때문에 굶겨놨더니 수의사에게 가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낯설지만 그래도 이 수의사 아저씨에게 라도 뭔가를 얻어먹겠다는 심산이었나 보다. 수의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유를 잡았다. 무릎 위에 잡혀 있다가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우유는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수의사가 뭐라고 말을 건넸지만 터키어라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 사이 남편이 이동장을 들고 내려오자 상황을 파악한 우유는 몸부림을 쳤고 수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유를 이동장 안으로 넣었다. 이동장 안에서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유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와서 남편이 설명해준 상황은 이러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수의사가 우유는 아직 어려서 안전하게 마취하려면 병원에서 정확한 체중을 재고 정량의 마취액을 투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만약의 사고를 최대한 막고 싶었던 남편은 우유를 병원에 데려가서 마취를 하기로 급히 결정했다.
마지막 순간에 정해지는 바람에 따로 설명할 경황이 없었다며 잘못 결정한 것 같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똑같이 결정했을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 사는 답답함이 훅 몰려왔다.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무력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평소 시장이나 식당, 카페 등 모든 장소에 남편과 동행해서 특별히 불편하다고 자각하지 못했는데, 보호자로서 한 사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내 상황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미리 말했다면 정확한 체중계로 미리 체중을 쟀거나 이동장 훈련을 시켰을 텐데 공유해 주지 않은 수의사의 실수에 화도 났다. 괜히 오늘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싶고 다른 날 수술받기로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한 시간 후 수의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개복하고 보니 우유의 자궁에 염증이 가득 차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하루라도 늦게 수술했으면 염증이 터져서 복막염이나 패혈증으로 이어져서 생명이 위태로웠을 수 있다고 했다. 확인하라고 보내준 영상을 보니 추출한 자궁이 평균 크기보다 3배가량 부풀어 있었다. 오랫동안 아팠을 것 같다며 오늘 수술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을 전했다.
수술하고 지쳐 누워있는 우유
1분 전까지만 해도 오늘 수술하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더 현명하게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서 선택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의 선택이 우유를 살려주었다.
아프다고 의사 표현을 할 수도 없고,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모든 생활을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고양이 일이라 그런지 사소한 선택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나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했던 일이 인생을 구해준 은인 같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별생각 없이 한 선택이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언제나 마음을 다하고 있다면 그 선택은 당시 최선의,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쓰지만 가끔은 그냥 운명에 맡겨봐도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