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두유 May 17. 2022

고양이는 이동장이 너무 무서워

동물 병원에 방문하기 위한 사투

고양이를 입양하고 나면 기생충 치료와 예방접종을 반드시 해야 한다. 특히 우유처럼 길거리 생활을 했던 고양이는 기생충이나 질병이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내원하는 것이 좋다.


2주 정도의 적응 기간을 마치고 나서 예방 접종을 하려고 동물 병원에 가기로 했다. 우유를 집으로 데리고 올 때 사용했던 이동장을 꺼내 깨끗하게 씻었다. 이동장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고 조그만 코를 꼼지락 거리며 정체를 파악하려는 모습에, 예상보다 쉽게 데려갈 수 있겠다 싶었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쉴 틈 없이 움직이던 분홍색 코를 믿었건만 위험을 감지했는지 우유는 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 소파 밑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냄새가 남아 있었나 보다. 전주인처럼 자기를 버리는 줄 알았는지 우유는 소파 아래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라고, 동물병원에 갔다가 집에 올 거라고 말했지만 알아들을 리 없었다. 마법의 간식 츄르도 소용없었다. 억지로라도 이동장에 넣어야 한다는 조언에 담요로 감싸서 잡으려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하악질을 하며 사정없이 발톱 공격을 해대는 우유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의심 가득한 눈으로 경계하는 우유

우유에게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내가 있었다. 지금의 아늑한 삶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다양한 변주로 찾아와 두려움에 마음을 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겼던 지난날, 최선을 다해봐도 땅에 닿지 못하고 계속 부유하는 존재 같았다. 남편을 만나서 처음으로 온전한 베이스캠프가 생겼다. 나답게 울고 웃고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공간이었다. 퇴사를 하고 번듯한 명함 하나 없는, 뜬구름 잡는 백수로 보일지라도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되었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눈물이 터져 나오곤 했다. 지금의 행복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따스한 보금자리에 이미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걱정이 가득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에게 상실에 대한 상상은 두려움과 직결된다. 불확실한 미래들이 머릿속을 헤집다가 상실의 기억을 건드리는 순간 갑자기 두려워진다.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들이 어느 날 사라진다면? 윤택한 삶을 다시 잃어버린다면? 가능성은 그저 일어날 수도 있고 반대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상상에 가까운데,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마치 현실 인양 마음을 집어삼킨다.


두려움에 사로 잡혀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지금이 소중하다. 우유도, 우리도 현재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먼저 두려움을 정확하게 알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동장은 단순히 물건일 뿐 우유를 파양 시킬 존재가 아니다. 우유가 이동장을 편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옷가지를 깔아 두고, 햇볕이 들어오는 곳에 두었다. 그 위에서 사냥 놀이도 하고 오후에 앉아 쉴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우유가 우리를 더 신뢰할 수 있도록 애정을 표현하고 다정히 말을 걸고 있다. 우유에게는 아직까지 언제든 일어날 것만 같은 “버려짐”이라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언제쯤 우리가 절대 자기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진심을 믿어 줄지 모른다. 그저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믿음이 스며 들길 바란다.  

다시 우리 품을 믿어줘서 고마워:)

나에게도 남겨진 과제가 있다. 상실의 가능성은 생의 소중함과 같이 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나를 조금 더 믿어본다. 두려웠지만 언젠가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천천히 쌓아 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냥이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