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두유 May 09. 2022

냥이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인간 캣닙 옆 인간은 웁니다.

어제까지 분명 남편과 둘 뿐이었던 집에 작은 생명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존재 자체가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저 작은 발로 열심히 걷는 것도 신기하고, 오독오독 소리 내며 사료를 먹고, 혀를 내밀어 물을 튕겨 가며 받아먹는 모습도 기특했다. 걸을 때마다 고양이 발바닥에 있는 말랑한 젤리가 바닥과 닿는 소리가 뽁뽁 들렸다. 일하는 방에 있다가도 우유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래층은 파악 완료한 것 같은데 침실이 있는 위층은 아직 무서운지 간식으로 꼬셔봐도 올라오지 않았다. 혼자 재우고 싶지 않아서 며칠은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소파를 침대로 만들어서 이불을 깔고 누웠더니 우유가 침대 아래에서 올려다보다가 남편 가슴팍으로 뛰어올랐다. 꾹꾹이를 한참 하더니 자리 잡고 앉아서 우리의 손길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유를 입양하기 위해 연락했을 때, 임시 보호를 하고 계시던 아저씨께서 아이가 전 주인에게 많이 맞았던 것 같다고 했다. 과도하게 무서워하기도 하고, 깨물고 공격하는 성향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적절한 입양처를 알아보지도 않고 버스 정류장에 박스 채로 버린 전주인이니 학대를 했을지 모른다는 말이 놀랍지 않았다. 입양하기로 결정한 이상 우리가 치유해주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상관없다고 했다. 우리가 모르는 우유의 과거에는 상처가 참 많았다. 그럼에도 용기 있게 이동장에서 바로 나와 집을 둘러보고 우리와 함께 잠을 청하는 우유가 기특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에게만 곁을 허락하는 우유를 보며 마음 한 켠에는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일할 때에도 남편 무릎 위에만 찰싹 앉아 있는 우유에게 마음속으로 물었다.  

‘왜 나에겐 와주지 않는 거야? 엄마보다 아빠가 좋아?’

고양이를 들이기 전부터 인간 캣닙인 남편을 부러워했다. 인간 캣닙인 사람들은 가만있어도 고양이들이 다가와서 다리 사이에 뺨을 비비거나 무릎에 올라와서 골골송을 낸다. 한 번이라도 고양이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이름을 부르며 고양이 장난감을 팔 아프게 흔들던 사람들, 이를테면 나는 김이 새고 만다. 스무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는 외삼촌 네 농장에 가도 고양이들이 남편의 무릎이며 어깨에 올라타고 다리 사이를 지나가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치댔다.


미래의 고양이가 나보다 남편을 더 좋아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변함없이 사랑해줄 거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도 남편도 똑같이 다정하게 대해주는데 왜 나에게는 와주지 않는 건지,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지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유를 사랑해주고 끊임없이 아껴줄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우유도 날 좋아해 줄 거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비교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남편과 고양이 모래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속상함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아무런 기대 없이 대해야 한고 했다. 사랑받고 싶다는 기대를 잔뜩 드러내면 고양이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저 사람 어딘가 꼬였다고 생각하며 피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서 한 말을 괜히 꼬아 들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거지만 이미 내가 이상하고 꼬인 사람이면 어떡하냐고 말했다.


언젠가 진심은 통한다는 말은 나에게 아무런 힘이 없었다. 언제라는 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타버릴 내 뜨거운 진심을 왜 알아주지 않느냐고 원망했다.  


우울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하자 우유가 나를 반겨주며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짐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으니 무릎 위로 올라와서 골골송을 선보였다. 방금 전까지 왜 우유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냐고, 남편을 더 좋아한다고 투정 부린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울면서 우유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마음을 열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기다려 줄 수 있는데 그 마음을 까먹고 조바심 내서 미안해.’


나한테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사랑받고 싶은데 기대가 좌절되는 순간이 무서워서, 기대하는 것조차 버거워져 허덕거렸다. 부끄러운 마음의 끝자락에 우유의 부드러운 발이 닿았다. 우유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 보다 소중한 사실은 우유가 용기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 작은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서 이곳에서 기쁘게 기다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묘연이 이끈 곳에 우유가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