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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Apr 25. 2022

묘연이 이끈 곳에 우유가 있었다.

반려묘를 만나는 운명, 묘연

강아지 파가 득세하던 시절부터 나는 꾸준히 고양이 파였다. 새침한 듯 우아한 듯 귀엽기까지 한 외모에, 조선 제일의 사냥꾼처럼 굴지만 실제로는 너무 사소하고 귀여운 젤리 발. 심장을 녹이는 고양이만의 매력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데도 선뜻 키울 수가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야 부모님 반대로 못 키웠다 쳐도, 회사를 다니고 혼자 살면서부터는 언제든지 고양이를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출장과 야근이 잦았던 터라 고양이가 외로워할 것만 같았고 좁은 원룸에서 살기에 답답할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 생명을 책임지기에 나 혼자는 벅찰 것 같기도 해서 계획만 세우다가 결정을 미뤘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당분간 터키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나서 퇴사를 했다. 집에서 할 일들이 생기면서 고양이와 함께 할 시간이 많아졌다.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둘이 살 집을 구했다. 원룸보다 훨씬 넓어진 환경에 같이 책임질 동반자도 생긴 것이다. 고양이를 맞이할 모든 준비가 다 된 듯했다.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유기묘 입양 사이트와 인스타그램 입양 계정을 찾아 포스팅을 매일 확인했다. “펌킨”이라는 이름에 맞는 고양이(이를 테면 치즈 태비)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감에 벅찼다.



마음만 먹으면 일사천리일 줄 알았는데 몇 군데 연락해 봐도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슬슬 마음이 조급해지려는 때에 회색 호랑이 무늬가 있는 우아하게 생긴 고양이를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6개월령 노르웨이 숲으로 추정되는 고양이가 버스 정류장에 버려져 있었고 현재 임시 보호 중이라는 글이었다. 치즈 태비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추운 겨울 벤치에 불안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깊이 박혀서 바로 연락을 취했다. 사이트 담당자는 입양 후 중성화 수술을 시킬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고양이들을 데려다가 새끼를 낳는 용도로 쓰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유기묘에 학대의 흔적도 있어서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을 것이고 긴장도가 높은 상태일 테니, 시간을 갖고 아이가 새 집에 적응하고 나면 수술을 시키겠다고 전했다.


우유는 이동장에 실려서 차로 우리 집까지 이동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유, 찌개, 프레야, 힐다 등 후보만 잔뜩 생각해 두었는데 그 자리에서 정해졌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다 보니 발음이 제일 부드러운 “우유”라는 이름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바로 나와서 둘러 보더니 가슴팍에서 잠을 청한 우유:)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낯선 곳에 놓이면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거나, 소파 밑 등 안전한 곳에 며칠 동안 몸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우유는 바로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준비해둔 사료와 물을 야무지게 챙겨 먹고 몸 전체 그루밍도 열심이었다. 잘 시간이 되자 남편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무서워하지 않고 빠르게 적응해준 우유에게 고마웠다.


고양이를 만나는 데에는 묘연이 존재한다고들 한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처럼 자묘추(자연스러운 묘연 추구)를 원하면서도 묘연이 있긴 할까 싶었다. 결국 선택은 인간의 몫일 텐데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인연의 시작에는 선택이 존재한다. 우리가 “우유”와 함께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묘연이 생겼고 운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제 매일 아침저녁 정해진 시간에 밥을 주고, 화장실을 청소해주어야 한다. 장기간 여행도 가기 힘들어졌다. 우유가 말을 듣지 않고 공격해도 화내지 않고 천천히 가르쳐야 한다. 우유와 함께 살겠다는 다짐 속에는 평생 우유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겠다는 굳건한 약속이 들어 있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첫 고양이, 첫 딸이 생겼다. 미래의 고양이는 “펌킨”일 줄 알았는데 “우유”를 만났다. 이런들 어떠하리? 우유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우유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유에게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고 정서적인 지지와 사랑을 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우유는 그냥 건강하고 행복하게, 우리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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