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두유 Apr 19. 2022

만약의 고양이, 펌킨

언젠가는 꼭 고양이를 키울거야!

회사 다니다가 코로나 시국에 영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니. 유튜브 각이다. 1년째 나라 밖으로 못 나가서 서러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국에 가면 무조건 유튜브를 시작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채널 이름도 “펌킨의 다락방”으로 정해 두었다. 하나에 깊숙하게 빠져들어 절여지는 법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꼴랑 하나씩만 가져다 논 나의 취미 공간에는 다락방이라는 단어가 제일 잘 어울렸다. 그리고 펌킨은 미래의 내가 키울 고양이 이름이었다. 몇 년 전 일본 히로시마의 어느 카페에서 애교 많은 치즈 태비 나츠를 만난 이후 고양이는 무조건 치즈 태비를 키우리라 다짐했었다. 

히로시마 까페에서 만난 고양이 나츠:)


언제쯤 펌킨을 책임질 만큼 내 인생이 탄탄해질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외국병에 걸렸다고 했고 나 역시 말기라고 자가 진단을 내렸다. 방랑하는 마음은 영역 동물인 고양이와 상극이었다. 게다가 퇴사를 하고 나면 얼마간, 또는 예상보다 긴 시간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수 있을 텐데 가슴으로 낳아서 지갑으로 키운다는 고양이를 잘 보필할 자신이 없었다. 


실물 고양이를 영접하지 못하고 고양이 모양, 고양이 일러스트 관련 물건으로 대리 만족하며 지냈다. 은도, 금도 아닌데 그 돈 주고 왜 사냐는 액세서리도 고양이 모양이면 선뜻 지갑을 열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사무실 책상만 보면 알 수 있는 고양이 사랑이었다. 



지금은 별 이견 없이 귀여움 받는 고양이 얼굴이 무섭고 불쾌하다고 평가받던 시절이 있었다. 나 역시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고양이를 싫어했다. 고양이는 공포영화에서 자주 불쾌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등장했다. 엄마는 고양이의 눈빛이 기분 나쁘고 재수 없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나에게 쏟아지던 안팎의 비난과 닮아 있었다. 눈꼬리가 올라가서 사나워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고, 여자애가 무표정으로 있으니 여간 드세 보인다며 웃으라는 어른들이 많았다. 비슷한 이유로 미움받는 고양이가 괜히 고까웠다. 착해 보이고 싶고 사람들 눈에 들고 싶어 안달 난 소녀에겐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다 내 몸뚱이 구석구석을 지독하게 미워하던 청소년기를 지나 몇 군데 정도는 가끔 예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때, 엄마와 나는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내 마음에 집중하고 싶은 욕구를 알아챈 순간부터 고양이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충성심이 없다고들 한다. 주인이 떠난 후 같은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사연은 여러 군데에서 들리지만 고양이에게는 그런 미담이 드물다. 어제까지 나를 엄마 고양이로 대하던 고양이가 수틀리면 오늘부터 이모 고양이로 격하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잘못하면 바로 주인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 것이 고양이 식의 사랑이다. 그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내가 반려인, 반려 존재와 만들어가고 싶은 관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피로 이어진 가족이거나 법적으로 서명한 부부라는 이유로 서로를 함부로 대하곤 한다. 가깝기 때문에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고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사과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한다고, 상처를 줬지만 사랑해야 한다고 말이다. 


마음껏 사랑하고 기꺼이 희생도 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관계를 추구했다. 우리가 함께인 이유는 지금의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상처를 줬을 때에는 충분히 사과하고 반성하는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잘못을 맹목적으로 감싸 주는 것도 싫고,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 


펌킨은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 같다. 내가 조금이라도 나쁘게 변한다면 바로 알려줄 수 있는 단호함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서 나는 상처받지 않고 안전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도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견고한 믿음으로 만들어진 안전한 보금자리를 모두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 앞에서 가장 많이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 어느 날 나를 잃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선인장이 되었을 때 내가 사랑하는 펌킨이 나에게 “먀오!”하고 경고를 해준다면, 정신 차리고 다시 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펌킨은 기꺼이 나를 다시 엄마 고양이로 맞이해 줄거라 믿는다. 


(하지만 내 첫 고양이는 "우유"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