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빴던 둘째 출산 후기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이었다. 예정일 당일 오전 11시경 드디어 이슬이 비쳤다. 서우처럼 머리 크기가 상대적으로 커서 예정일에 딱 맞춰 나오는게 부담스러웠던 아내는 예정일 1~2주 전부터 부지런히 산도 타고, 운동도 하며 열심히 몸을 굴렸으나(?) 봄봄이는 천하태평인 듯 했다. 그러다 마침내 출산의 신호탄이 오른 것이다. 원활한 출산을 위해 이날도 아내, 서우와 함께 집 뒤에 있는 인능산에 올랐다.
인능산은 참 아름다웠다. 말 그대로 가을이었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 속에서 노랗고 붉은 잎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이날은 신발을 신고 걸었다. 보통은 맨발로 산에 오른다. 맨발로 산에 오르면 돌과 흙의 압력과 온도가 발바닥을 자극한다. 자연스럽게 걸음은 느긋해지고 주위를 둘러보며 가을 산의 빛과 소리와 냄새를 만끽하게 된다. 신발을 신고 걸어도 여전히 가을이 깊어가는 산이었다. 서우는 길다란 나뭇가지를 찾아서 지팡이처럼, 무기처럼 휘두르며 앞장섰다. 산에 가자고 하면 다시는 안 가겠다 하면서도 막상 오면 너무 잘 지낸다. 지금, 여기에 충실한 표본이다. 지금, 여기까지 데려오는게 힘들어서 그렇지...
아내는 평소대로 가던 코스를 힘들이지 않고 걸었다. 이때가 이미 1시간 정도 산에 있었던 때였다. 나오기 전 산에 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서우에게 핫초코를 먹으러 가자고 꼬셔서 슬슬 내려갈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속에서는 양수가 터지면 어쩌나, 진통이 본격적으로 발동하면 어쩌나 했지만 아내는 진통이 시작되도 병원에 갈 여유는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산책을 마치고 꽤 걸어야 하는 카페로 향했다. 서우는 여전히 씩씩하게 잘 오르고 내려갔다. 양 손에 여기 저기 휘둘러보며 단단한 것으로 고른 나무막대기를 쥔 채였다.
우리는 내려와서 마시멜로가 들어 있는 핫초코를 먹으러 갔다. 서우가 5살인가 6살 때 핫초코 하나에 빨대 3개를 주셨는데, 서우가 3개를 한입에 넣고 먹던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맛이 너무 변했다. 핫초코는 밍밍하고 마시멜로도 없었다. 커피 중심으로 개편이 된 모양이었다. 가을에 흠뻑 취해있던 우리는 다시 안 와도 될 곳 리스트를 하나 추가하며 씁쓸하게 가게를 나섰다. 장사는 잘 되는 곳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슬슬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었다. 청계산 곤드레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먹기로 했다. 사실... 세번째인가, 네번째 최후의 만찬이긴 했다 ㅋㅋ 봄봄이가 더 일찍 나올 줄... 저녁을 먹으며 서로 예정일이 오늘인데 오늘은 안 나오겠구나 했다. 그러다 밥을 먹는 도중 아내가 배가 조금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심한 건 아니고 조금 아픈 정도라고 해서 일단 조산사님께 연락을 드려보라고 했다. 조산사님은 집에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고 병원에 와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밥을 싹싹 다 먹고 집에서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진통의 파도가 두 번 정도 밀려왔다. 아내는 호흡을 하며 고통을 마주했고 서우는 그런 엄마를 보며 많이 아프냐고,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출산방을 꾸미는 일이었다. 서우와 함께 미리 주문한 가랜드와 꽃무늬 장식을 벽에 붙였다. 그 사이 아내는 진통의 파도가 왔다 가고 있었다. 조산사님이 한번 내진을 해보자고 하시더니 벌써 자궁이 4~5cm가 열렸다고 했다. 나는 약간 얼떨떨했다. 아니, 아내는 아직 여유 있는 것처럼 말했었는데? 역시 둘째는 둘째인가 싶었다. 그 사이 진통의 강도는 강해져 가는데 나는 서우와 함께 종이 꽃볼을 한겹 한겹 펴가며 볼륨감을 넣고 있었다. 이러고 있어도 되나 눈치가 보였지만... 나는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러다 둘라님이 오셨다. 둘라님은 오자마자 바로 아내가 이런저런 자세를 잡도록 도와주셨다. 서우와 한켠에서 체스를 하던 내 귀에 점점 깊고 짙어지는 아내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다른 쪽 다리를 침대 아래쪽으로 늘어뜨리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둘라님은 간간이 배를 만져보며 아내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하셨다. 잘할수록 통증은 더 심한 듯 했다. 아픈 걸 정말 잘 참는 아내가 '선생님, 제발 이 자세 그만하면 안돼요?' 할 정도였으니... 둘라님은 노련하게 한 번만 더 하자고 부드럽게 권하셨고, 아내는 그 자세를 해냈다.
아마 이때가 기점이었던 것 같다. 아내의 진통은 급속도로 진행이 됐고, 소리도 더 크고 아프게 지르기 시작했다. 서우는 아프게 소리지르고 괴로워하는 엄마를 보며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가슴이 답답해."
두 손으로 귀를 막기도 했다. 그나마 9~10월에 '아가야 안녕' 책을 여러 번 읽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질러야 아기가 더 잘 나온다는 걸 예습하고 왔는데 이 정도였으나,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정보 없이 왔다면 더 놀라고 당황했을 것 같았다. 그런 서우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아내가 날 손으로 밀치며 서우 데리고 제발 밖에 나가라고 했다. 나는 얼른 서우를 데리고 나갔는데 닫힌 문 뒤로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우와 나는 엄마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나와 있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진행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서 서우에게 잠깐 다시 들어가보자고 했다. 동생이 곧 나올 것 같다고. 그런데 서우는 안 가고 싶다고 해서 그러면 일단 아빠만 잠깐 갔다 오겠다고 했다. 출산방에 들어가니 조산사님이 한 분 더 오셨고 여러 도구를 챙겨오시기 시작했다. 침대 바닥은 양수가 터졌는지 젖어 있었고 한쪽에는 양수인지 따뜻한 물인지 모를 것이 담긴 통도 보였다. 조산사님이 말했다.
"아기, 오늘 나올 수도 있겠는데요?"
이럴수가?! 저녁 7시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밥 잘 먹고 그랬는데? 돌아갈 생각하고 병원에 와보라고 하셨었는데? 이때 시간이 대략 11시 20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내는 정말 막바지 진통 중이었다. 우리 둘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출산하고 있었다. 엎드려 있던 아내는 조산사님의 권유로 하늘을 보고 누웠다. 이제 곧 아기가 나올 것 같다며 조산사님이 아빠 얼른 오시라고 했다. 출산 리허설 때 아기 인형으로 받아보는 연습을 했던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다. 리허설에서 인형으로 할 때도 두근거리던 나였는데, 실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서우 때는 아내가 출산 의자에 앉았고, 와서 받으세요 하자마자 내 손에 서우가 쏟아지듯 나왔는데 이번에는 아기 머리가 빼꼼 보이다 다시 들어갔다 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고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아파 보였는데... 아내는 소리를 지르다가 주위에서 소리 지르지 말고 힘만 주라고 하자 바로 그렇게 했다. 너무 깜짝 놀랐다. 아니, 저게 하라고 해서 되는 일인 건가... 아픈 걸 잘 참는 건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무튼 여러가지로 서우 때와 정말 다른 양상이 이어졌다. 이러다 서우랑 태어난 시간도 똑같아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서우 : 23시 45분)
몇 번 소리 없이 끄으으으윽 힘을 줄 때마다 봄봄이의 머리가 나왔다 들어갔다. 나는 손에 위생장갑을 끼고 조산사님과 함께 아이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이 시점의 사진을 보니 소리 없는 아내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게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드디어 빼꼼하게 보이던 아이의 머리가 아내의 안간힘에 쑤욱- 하더니 왈칵~ 쏟아져나왔다. 23시 39분, 정말로 오늘 나왔다. 병원 도착 후 약 2시간 반 걸렸다. 서우와 딱 6분 차이로 태어났다.
인형으로 리허설 할 때도 긴장했던 나는 이 작은 아이의 머리를 내가 잘못 만지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아 동공에 매우 빠르게... 흔들렸던 것 같다. 그 다음에 조산사님이 어깨도 어쩌고 하셨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봄봄이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 들어올리면서 너무 세게 잡는 거 아닌가 무서워하면서 탯줄이 다리에 걸리지 않게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탯줄에 걸고 잘못 움직여서 태반이 빠지는 상상을 0.1초 정도 했던 것 같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으앙~ 울던 아이는 어느새 조용히 세상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무사히 엄마 품에 안겨줬다. 아내는 하얗게 불태운 얼굴로 있다가 아기를 보자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봄봄이는 엄마 품에 잠시 안겨있더니 손으로 옷깃을 잡고 다리를 움찔거리며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젖을 찾으러 움직이는 거였다! 아니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한다고? 끈질기게 시도하던 봄봄이는 엄마 몸에서 옆으로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생명력을 뽐냈다.
이윽고 정원장님이 오셔서 찢어진 회음부를 꼬매주셨다. 다행히 근육이 손상된 건 아니고 피부만 약간(?) 찢어졌고, 출혈도 거의 없고 건강하게 출산했다고 격려해주셨다. 동생이 태어나는 걸 아빠 등 뒤에서 보던 서우가 엄마 곁으로 다가왔고 엄마는 출산 후 처치로 아파하다가 이내 환하게 웃어줬다. 정말로 엄마는 위대하다. 대단하고 엄청나고 또... 엄마는 강하다.
엄마가 출산 후 처치를 받는 동안 나는 웃통을 벗고 봄봄이와 캥거루 케어를 했다. 아기의 부들부들한 피부 감촉은 참 놀랍다. 그렇게 아이를 안고 있으니 둘라님이 네 식구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서우가 동생을 안아주었다. 어색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얼굴로 동생을 안은 서우가 씨익 웃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 형제가 앞으로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자라날까 보는 것은 더욱 그럴 것이다.
서우 때 로터스 버스를 했던 우리는 이번에 병원에서 퇴원할 때 탯줄을 자르기로 했다. 둘라님이 봄봄이의 밥을 책임져주던 태반과 함께 이쁜 사진을 찍어주셨다. 이제는 한 몸이었던 엄마와 떨어져 두 몸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봄봄이의 생명은 모유를 통해 엄마의 생명과 이어질 것이다. 그러다 서서히 자기 스스로 밥을 챙기게 될 것이다. 그러다 자기의 길을 걸어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덧 시간은 1시를 넘어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갓난아기 때 빼고 이 시간에 깨어본 적이 없던 서우는 출산 과정이 준 흥분에 사로잡혔는지 전혀 졸린 기색이 없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출산방 한켠에 요와 이불을 깔아주고 잠을 청했다. 서우가 코를 골기 시작했지만 나는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이 지난한 출산이 끝나자마자 육아가 시작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이내 봄봄이는 젖을 찾았고, 아내는 젖을 물렸고, 나는 뭔가 필요한 일을 했다. 대부분은 선생님들이 와서 해주셨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가급적 깨어있으려 노력했다. 똥을 싸고, 젖을 먹고 하는 과정들을 기록하면서 이제 또다른 시작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아내는 이번 출산이 정말 빠르고 강하게 진행된 고통이 컸는지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했다 ㅋㅋ...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묶을까? 물으니 아내는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얼굴이 되었다. 나이도 이제 만만치 않고... ㅋㅋ 정원장님은 나중에 아이가 좀 크면 다시 다 까먹게 된다고 하셨다. 과연...?
돌아보면 봄봄이는 참 느긋하면서도 딱 맞춰서 온 아이였다. 뱃속에서 하늘을 보고 있어서 나중에 나올 때는 엄마 엉덩이 쪽을 봐야 한다고 얘기해주곤 했는데, 조산사님 말씀에 따르면 정말로 나올 때 자기가 몸을 돌려서 나온 것 같다고 한다. 또 실제 출산 예정일은 24일이었는데 우리가 이틀을 착각해서 22일로 알고 예정일까지는 나올거지? 했던 말을 찰떡같이 들어줬다. 뱃속에서는 얌전하게 있고, 나와서는 활발하게 젖을 찾고. 알아서 잘 하고 딱 맞춰서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 생후 19일 정도 됐는데 밤에도 잘 자고, 잘 먹고 한다. 아직 폭풍의 시간이 오지 않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하지만... ㅋㅋ 참 감사하다.
이제 나는 1년간의 육아휴직을 하게 된다. 아내는 6개월을 기본으로 하고 상황에 따라 조정하기로 했다. 이 귀한 시간 동안 네 식구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을 어떻게 꾸려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려 한다. 휴직 이후 나와 아내의 일, 서우의 학교 생활, 봄봄이의 성장을 중심으로 모든 가족의 건강과 화목함을 잘 지켜나가며 지내볼 예정이다. 그 과정을 틈틈이 기록하여 이 순간의 기쁨과 다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사랑하는 우리 둘째의 탄생과 아내의 순산을 정말정말 축하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