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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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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Apr 13. 2024

서우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음.. 요즘 서우에게 화를 많이 내고 있었다. 

주된 이유는 말하는 걸 듣지 않아서.

아침에 일어나라, 학교 가야 한다고 하면 미적거리고

겨우 일어나면 멍하니 있어서 옷 입어라, 가방 챙겨라 하면 또 한 세월이고.

그러다 지각이 임박하면 그냥 말하다가 나도 화가 나서 소리치고 다그치고 윽박지르게 된다.

그러면 서우가 움직이고, 나는 왜 좋게 말할 때는 안 움직이고 이렇게 해야만 말을 듣냐고 또 한 소리 한다.


그러고 나서 학교로 같이 향할 때 나는 서우를 뒤에 두고 앞서 간다. 

내가 지각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고 시간을 보며 서우야 지금 몇 분이야, 서두르자라고 하고 

서우는 종종걸음을 걷는 듯하다 다시 자기 속도로 걷는다.

부글부글... 


이런 아침이 반복되던 지난주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내가 앞서 걷고 있는데 서우가 다가와 내 손을 쓱 잡았다. 

조금은 차가운 피부를 느끼며 손이 왜 찰까? 하며 서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나란히 걸었다.


시간이 흘러 선거 다음 날, 목요일 아침에 미적거리며 시간을 끄는 서우를 다그쳐가며 준비를 시켰다.

옷을 입고 있으라 하고 5분 정도 내 준비를 하고 돌아왔는데 

일어난 모습 그대로 자기 방 의자에 앉아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있다가

나를 보자 화들짝 놀라며 다리를 내렸다.

빈약한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서우에게 학교 가는 거 이제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알아서 준비해서 혼자 가라고 했다.

그제야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난 서우가 제발 학교에 같이 가자고 했다.

이제 너무 흔한 레퍼토리라 감흥이 없는 '제발'을 한 귀로 흘리며

아빠는 이미 여러 번 시간도 알려주고 뭐 해야 한다고 말해줄 만큼 말했다, 

더는 할 얘기 없다고 하고 쌩- 지나쳤다.


서우는 그런 내 주변을 맴돌며 민망한 듯 웃음을 지어보려 했다.

그 웃음을 보고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아 외면하는데

서우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빠가 같이 안 가면 나도 학교 안 갈 거야."

이 말에 폭발한 나는 

"그러면 너 오늘 지각하면 게임도, 간식도 2달 동안 금지고, 

여행도 그냥 안 갈 거야. 

알아서 해. 그리고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

물통을 가방에 넣어주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학교에서 올 때도 혼자 와야 해?"

그건 데리러 갈게라고 하려다

"당연하지!"

하며 아이를 밀치듯 말했다.


서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집을 나섰다.

나는 알고 있었다.

서우가 내 곁을 맴도는 걸 외면했을 때부터 이미 후회하고 있다는 걸. 

언제든 감정의 열차에서 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다음 역에 가야만 내릴 수 있는 줄 착각한다.

내가 내리는 곳이 바로 역인데 말이다.


사실 서우가 ㅇㅇ하면 ㅇㅇ 안 할 거야!라고 하는 화법은 모두

내가 즐겨 쓰는 화법이다.

서우가 원래 저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는 방법이 내게는 벌칙과 제한이었는데

이것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벌칙과 제한을 즉석에서 통보하는 것이었다.


서우처럼 주관이 뚜렷하고 동의가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아이에게

일방적인 통보는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 일일지 

조금만 돌아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고 힘이 세고 아빠라는 것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앞에서는 마지못해, 정말 마지못해 굽힐 뿐이다.

속에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혹은 분노를 쌓으며.


최근에 이어졌던 나의 분노 러시는 결국 서우의 분노로 돌아올 것임을 깨닫게 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 서우가 마음을 닫으면 어쩌지.

내 손을 먼저 잡아주던 아이가 이제는 내 손을 피하면 어쩌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싫어하는 걸 넘어서 분노의 대상이 되면 어떻게 하지.


결국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했다.

하교 시간이 되어 얼른 달려갔다.

다른 아이들은 거의 다 나온 것 같은데 서우가 나오지 않자 갑자기 여러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학교에 안 가고 다른 곳으로 갔나?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겠지.

나 안 보려고 먼저 나왔나?

그렇게 시계와 학교 안쪽을 번갈아보며 동동거리고 있는데

서우가 나타났다.


교문 앞에서 만난 서우는 평소처럼 내게 학교에서 만든 물건을 보여줬다.

"아빠! 이거 신기한 거야. 접으면 이렇고, 펴면 이렇게 되는 거야."

마음이 찡- 울리는 통에 눈물이 살짝 날 뻔했다.

근데 울고 싶은 건 서우였을텐데 내가 울면 안 되지.

"오 그래? 잘 만들었다 ㅎㅎ"

서우의 얼굴을 껴안고 쓰다듬으며 함께 집으로 향했다.


"서우야. 아침에 아빠가 잘못했어.

서우가 늦장을 부려서 화가 나서 막 소리치고 그랬는데,

그거랑 게임이랑 간식 2달 얘기한 거랑 여행 얘기한 거는

아빠가 서우랑 미리 얘기하지 않고 갑자기 일방적으로 한 거라

서우가 너무 억울했을 것 같아.

그렇게까지 아빠가 할 일은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서우가 그렇게 해도 다시 잘 얘기해 보고

벌칙이나 이런 것도 같이 얘기해서 정하도록 하자.

앞으로는 이렇게 안 할게. 아빠가 잘못했어."


서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밤이 됐다.

1달쯤 전부터 우리 둘은 자기 전에 하루의 기분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서우야, 오늘 기분은 어땠어?"

"안 좋았어. 아빠가 그렇게 얘기해서 진짜 싫었어.

화가 너무 많이 났고, 억울했어."

"맞아. 아빠가 잘못했어. 혹시 슬픈 것도 있었어?"

"아니! 슬픈 건 거의 없고 99%, 아니 100% 억울하고 화나는 거였어."

"아이고 그랬구나. 학교 갈 때 진짜 기분이 안 좋았겠다."

"응.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도 인사도 제대로 못했어."

"그래, 아빠가 정말 미안해. 아빠 용서해 줄 수 있어?"

"아니, 아직도 기분이 별로야."

"그래? 알겠어. 그렇지만 아빠가 왜 그랬는지는 알겠어?"

"응. 내가 시간을 엄청 끌어서 그랬지. 그래도 심했어."

"맞아. 아빠는 서우가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지각하게 되는 게 싫어서 그랬어.

만약에 아빠가 서우가 얘기하는 걸 계속 안 듣고 아빠 할 일만 하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화가 나겠지."

"그래. 그래서 그랬던 거야. 그래도 아빠가 그렇게 말한 건 잘못한 거야.

우리 앞으로는 서로 얘기해 가면서 정해보자. 

아빠는 서우가 아침에 힘들거나 피곤해서 도움이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그래."

"그러면 아침에 서우가 못 일어날 때 아빠가 어떻게 하면 되겠어?"

"음... 일어나 줄래?라고 하면 돼."

"ㅇㅋ 알겠어. 그럼 내일 그렇게 해보자."


다음 날 아침, 서우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우야. 학교 가야지."

쉽사리 잠을 깨지 못하는 서우.

"일어나 줄래?"

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옷을 입고 함께 준비하고 학교에 갔다.


아이와 함께 지내며 말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된다.


어떤 말은 그 말을 함으로써 그 뒤의 많은 것들을 차단한다.

상황이나 감정, 생각, 행동을 모두 잘라버린다.


어떤 말은 돌이킬 수 없고 마음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면 어떤 열매로 돌아올 지도 알 수 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냥 빚을 갚는 것부터 했던 사람이라는 걸 아프게 배우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가해자(?) 측이고 서우가 더 아플 것이다.

 

나는 갚아갈 빚이 꽤 되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우가 사춘기가 되기 전, 어른이 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많은 실수와 잘못이 있었지만

당장 오늘이라도 말하기 전에 이게 닫는 말인지, 여는 말인지 멈칫하는 걸 실천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잠깐의 머무름이 정말로 다른 상황을 만들고, 다른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내게만 빠져 있지 않으면 된다.

서우를 보고, 내 손을 잡은 서우의 손을 떠올리고, 환하게 웃는 나의 첫째를 잊지 않으면 된다.

지금은 어렵기만 한 이 일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되기를 바라며...


서우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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