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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 굽는 타자기 Jul 20. 2022

그깟 마시멜로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다니

그날은 오전부터 시사회 볼 생각에 모처럼 들떠있었다. 친구네가 시사회 영화 관람표를 주고, 남편과 내가 저녁에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아이까지 봐주기로 했다. 시사회를 잘 보고 좋은 기분으로 집에 왔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레이더망에 딱! 걸리는 것들이 보였다. 마시멜로우와 휴대용 가스버너, 그리고 역한 냄새까지.


얼마 전 남편이 꾸마가 좋아한다며 마시멜로우 큰 봉지를 하나 샀다. 남편은 매일 빠지지 않고 아이에게 마치 보약 먹이듯이 가스불에 그걸 하나씩 구워주고 있었다. 내가 싫은 내색을 비치니, 내가 안방에서 거나 외출했을 때 꼭! 아이가 아빠를 조르고 마시멜로우를 가스불에 구워주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못마땅했던 터였는데  그날 밤! 마시멜로우와 가스버너가 나 보란 듯이 펼쳐진 사건(?!) 현장을 보고 나니, 오감이 되살아나가고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평소에는 남편이 명령조에 시키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뭘 해달라고 할 때도 조심스럽게 "시간이 있으면 ~해주세요"라고 최대한 상냥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말만 좀 예쁘게 하면 내가 원하는 걸 신랑한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기에.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쌈닭처럼 매섭게 남편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마시멜로우 때문에 충분히 누적된 불편한 감정이 쌓여 있었기에. 총알이 장전된 상태였으니 이제! 총을 쏘기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남편 들어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마구 쏟아냈다.


"너는 왜 아빠한테 졸라서 꼭 엄마 없을 때 마시멜로우를 구워달라고 그러는 거야? 니가 평소에 밥을 잘 안 먹는 것도 다 마시멜로우 먹어서 그래. 그리고 가스불에 마시멜로우 구워 먹을 거면 에어컨 끄고 창문 열고 구워 먹어야지. 그래서 요즘 에어컨 틀면 냄새도 나는 거야."


짜증과 화가 솟구치는 그때! 아이의 편식과 에어컨 냄새의 원인이 마시멜로우 탓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를 속사포처럼 쏟아 냈다. 고백하건대 그 순간에는 인과관계가 확실한 문제였다. 진짜다.


남편에게 들어라고 한 말이었기에 무방비 상태로 빗발치는 총알을 맞은 남편 역시 공격을 시작했다.


"주방 환풍기 틀고 마시멜로우 하나를 10초밖에 안 구웠는데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그리고 시사회 영화 보고 좋은 기분으로 집에 왔는데 대체 왜 그래?"


어떻게든 변명을 하는 남편을 돕기라도 하듯이 꾸마도 울면서 내게 말했다.


"엄마! 내가 마시멜로우 좋아하는데 엄마가 싫어하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안 먹었는데 왜 그래?"


남편과 아이는 똑같이 내게 "왜 그래?"라고 물었지만 나는 왜 그러는지 답을 찾기는커녕 같은 말을 하는 부녀가 같은 편이 된 것처럼 맞서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내 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한하게도 화난 감정은 금세 서운한 마음으로 옮겨졌다.


며칠 전 조리원 동기들을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둘 다 남편이 자주 삐지고 말은 안 한다기에, 내가 마치 일반적인 남편의 마음을 정확히 아는 것처럼 말했었다.


"남자 스스로 쪼잔하게 그깟 일로 삐지는지 아내한테 들키기 싫어서 뭣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한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거야. 그냥 남편들도 솔직하게 말하면 싸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텐데..."


나는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여자였다. 인정한다. 가부장적인 남편들을 운운하면서 다 아는 척을 하고, 해결책을 내놓았던 나도, 내가 한심하게 여겼던 여느 남편처럼 삐졌다. 그리고 그런 민낯을 차마 드러내기 싫어서 입을 닫았다. 충분히 장전된 총알들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기도 했고, 같은 편이 된 부녀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리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논리적이라고 쏟아냈던 말들의 오류를 발견했기에.


남편은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더 이상 나와 싸우기 싫은 탓에 일단 집을 나갔다. 나도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집안일을 하는 대인배로 보이고 싶어서 그사이 밀린 빨랫감을 분류하고 속옷 애벌빨래를 하고 있었다.


평소 꾸마는 부부싸움을 하는 엄마, 아빠를 보게 되면 조금이라도 더 잘못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따로 가서 먼저 사과하라고 독려한다. 그날은 아빠가 집을 나갔으니까 내게 온 거겠지만 혼자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는 내게 다가온 아이가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꾸마는 딱 봐도 마치 온몸으로 자신을 밀어내고, 마치 분노조절 장애가 있어 보이는 날 안아주며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내가 미안해. 근데 용기가 있는 사람이 이렇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아이의 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탁! 쳤다. 내가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화내고 짜증 낸 건데 외려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미안하다고 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감지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깟 마시멜로우 때문에 화가 났기에, 나중에는 내 편이 없어서 서운해서 삐졌다는 걸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 앞에서는 꼭! 대인배로 보이고 싶었다. 자기가 눈물을 보여도 꿈쩍도 하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했는지 아이는 일격을 가했다.


"엄마는 자존심이 없어서 이렇게 삐지는 거야."


평소 아이와 남편에게 대놓고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내게 예쁘다는 말을 많이 해줘야 한다고 했었다. 아마도 '자존감'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자존심이'라고 잘못 말한 것 같다. 아이 말대로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그깟 마시멜로우 때문에 내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였던 거다.


아이에게 못난 내 모습을 이미 들켰다. 나는 더 숨고 싶어서 꾸마에게 차마 속마음을 말하지 못한 채, 남편에게 등을 돌린 채 뒤척이는 밤을 보냈다. 다음날! 삐진 티를 팍팍! 내고 절대 남편이 먼저 사과하기 전에 절대 말하지 않을 거라는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다음 주 일정 변경을 남편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직접 말하기 싫어서 남편에게 사무적으로 문자를 보냈다. 집에 같이 있는데도 문자를 보내니까 남편은 머쓱해서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난 화난 목소리로 말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문자를 보내라고 쏘아붙였다. 그래도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말을 건 남편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다시 마시멜로우 얘기를 꺼냈다. 남편도 화가 났는지 자기 방(옷방 겸 작업실 방)에 들어가 버렸다. 다시 지난밤 짜증과 서운함이 물 밀듯이 올라오고 급기야 남편 뒤통수에 대고 아이 몸에도 좋지 않고 에어컨 냄새의 근원이라며 마시멜로우를 버리겠다고 선포했다.


난 마시멜로우를 버리겠다고 했지만 막상 버리지는 못하고, 찬장 위쪽에 뒀다. 근데 남편은 꾸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걸 그냥 버린 줄 알고 화가 났는지 오후 일정보다 빨리 집을 나갔다. 남편이 집을 나가고 혼자 있으니까 내가 좀 심했나 싶은 생각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어젯밤 꾸마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용기 있는 사람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내 자존심이 끝까지 허락하지 않고 저항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아이의 말대로 용기를 조금 내보기로 했다. 미. 안. 하. 다. 말하고 나니 진짜 별 거 아니었다. '미안하다'는 네 글자 말을 하지 못해서 내 안에서 그토록 저항을 했나 싶었다.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니까 남편도 기분이 풀리고 우리가 그깟 마시멜로우 때문에 싸웠다고 가볍게 말할 수 있었다. 1박 2일 동안 계속된 부부 싸움이 생각보다 쉽게 종결됐다.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하교한 꾸마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가 니 말대로 용기를 내서 아빠한테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어. 잘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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