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기 전에
어느덧 2023년 한 해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이쯤 되면 항상, 그래 항상 시간의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블로그 이웃들의 글을 찬찬히 읽다가 올해 초에 세웠던 다짐과 목표들이 기억났다. 아.. 올해 초 나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목표들을 세웠고 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들도 촘촘하게 짰었다. 여러 달이 지났고 어느새 나는 그 사실을 완벽하게 잊었다는 사실을 지금! 깨달았다. 목표의 성과에 상관없이 과정들을 다 거쳤다면 좀 더 나 자신에게 뿌듯했을 텐데, 아쉽다.
그렇지만 남은 두 달이 있기는 하다. 좀 더 성실하게 노력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소중하다.
오늘의 글은 이게 아니다. 가을의 마지막 달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실감하다 보니 서론이 길어졌다.
가을의 마지막 달인 11월이 막 시작되었다. 10월 중순부터 붉게 물들어가던 단풍은 절정을 맞았고 이제는 비바람과 함께 낙하를 반복하며 가을의 마지막에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바닥에 노랗고 붉은 낙엽들이 가득히 뒹군다.
아침 비에 부슬부슬 젖은 단풍잎들이 인도의 색깔을 바꿔버렸다. 단풍잎을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 잎의 끝자락들은 뾰족뾰족하게 생겼는데 보통 그 뾰족함이 다섯 갈래이거나 일곱 갈래이다. 홀수로 되어 있어 가장 위 중앙은 홀로 뾰족하고 그 옆으로는 쌍으로 갈래나 있다. 노랗거나 조금 붉거나 아주 붉어 짙은 버건디가 된다.
꿀잠을 겨우 뒤로 하고 퀭한 채로 아침 산책에 나선 오늘 아침, 가을의 풍경과 빗 속의 단풍들은 꽤나 상쾌함과 신선한 기분을 선사했다.
빗물과 함께 바닥에 찰싹 붙은 단풍잎들은 별빛처럼 빛나 보이기까지 했다. 떨어져도 변함없이 예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은 가을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뜨겁고 밝음이 오래 지속되는 여름의 낭만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가을이 아름답다는 것은 자명하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 단풍놀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여름까지 초록빛을 발하던 산천은 가을이 되면서 좀 더 성숙해진다. 청춘의 고조를 빛내던 여름에서 점차 단단해지며 물들어간다. 여름의 눈부심과는 또 다른 눈부심이다.
사계절이 있다는 건 때로 참 귀찮은 일이지만 분명히 매우 큰 장점들이 있다. 매 계절마다의 차이와 아름다움을 마주하며 느낄 수 있다.
돌아오는 이번 주부터는 기온이 뚝 떨 떨어질 거라고 한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 겨울 옷을 미리 옷장 가득 준비해 놨다. 가을을 실컷 즐겼으니 아쉽지만 이제는 내년을 기약하기로 하자. 가을의 시간 덕분에 나도 조금은 더 무르익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