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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Jun 16. 2021

취존 부탁드립니다.

여자 셋과 사는 남자 이야기 - 7

취미는 장비발이라고 했던가?


 우리 부부는 사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그렇다 할 취미가 없었다. 나야 청년 시절부터 교회와 연관된 생활을 많이 했으니, 종교 생활이라는 취미가 직업으로 발전됐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게 취미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긴 하다. 교회를 친구의 전도로 처음 다닐 때, 그 친구에게 드럼도 배우고, 당시 학생부 담당 전도사님을 통해 통기타도 배우고, 교회 안에서 그런 취미(?) 생활을 영위해 왔었다. 결국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목사라는 직업적으로 조금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 되었지만, 지금도 취미가 악기 연주라고 하면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어쨌든, 악기라는 것은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흥미 있어서 시작했지만, 취미로 누구에게 이야기할 만큼 꾸준하게 즐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렉기타도 독학으로 하다 보니, 어설픈 면이 많은데 관련된 교본을 사서 배워 보려고 했지만... 영 잘 손이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처음 기타는 오베이션 어쿠어스틱 기타였고, 그 이후에 페르난데스의 SG 일렉기타, 테일러 어쿠어스틱 기타, 펜더 텔레캐스터, 스콰이어 재즈 베이스, 최근에 구입한 그레치의 G5622T 모델이 있다. 대락 기타에 돈을 많이 쓴 것 같지만, 사실 내 돈으로 산 것은 펜더 일렉과 그레치 기타 정도 일 것이다. 물론 지금 나열한 기타를 모두 소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서져 버린 것도 있고, 친구가 기타가 필요하다고 해서 줘버린 것도 있다. 그리고 중고시장에 내다 판 기타도 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기타는 테일러 214ce 모델과 가장 최근에 악기중고커뮤니티에서 구입한 그래치 G5622T 모델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양육하다 보면, 여기저기 돈 들어갈 데가 많다. 그래서 취미를 잘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내 돈이지만 내 돈이 아니고, 가정 공동체의 돈이기 때문에 싼 거야 그냥 산다고 해도, 고가의 악기들은 내가 사고 싶다고 살 수는 없다. 거기다가 전도사, 목사 월급이 얼마나 되겠는가? 네 식구 먹여 살리는 것도 사실 빠듯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내는 나의 취미 생활을 많이 인정해 주는 편이다. 주위 또래의 부부를 살펴봐도 남편의 취미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아내를 본적이 거의 없다.


 일반적이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생각과 철학이 바뀌는 것 같다. 아내는 자기를 꾸미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이를 낳으니 자기 자신의 패션(?) 보다는 아이의 옷을 어떻게 입힐 것인가에 대한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자기가 코디한 옷을 아이에게 입히는 것을 매우 즐겁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편인 내가 봤을 때는 물론 아이의 옷을 깔끔하고 이쁘게 입히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아내의 경우에는 취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문득,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너 기를 때, 옷 하나 잘 안 사 입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안정적인 초등학교 선생님에다가, 사실 어머니도 작지만 경제활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국립대 인문학과를 가서 학비도 매우 저렴했다. 우리 집은 절대 가난한 집이 아니었다. 풍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렸을 적 기억으로 돈 때문에 서럽거나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옷 못 사입을 정도로 돈이 없진 않지만, 내 옷을 사는데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3년 된 검정색 반팔티를 입고 작성하고 있다. 최근에 옷을 산거라곤, 와이셔츠 목 부분이 너무 누렇게 변해서 어쩔 수 없이, 2만 원짜리 와이셔츠 한 장 산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이 부족하거나 불편하다고 전혀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첫째 아이나 둘째 아이 옷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내가 이 정도니 아마 아내는 나보다 더했으리라......


"너 기를 때, 옷 하나 잘 안 사 입었다."라는 말은 '돈이 없어서 나는 못 입고, 너만 사 입혔다.'라는 유세가 아니라, "내가 너를 정말 사랑으로 키웠다."라는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니, 그러지 말고 옷 좀 사 입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식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했던 그 모습을 나도 닮아야지 라고 생각하면 그냥 지나가는 문장도 감격스러워질 것이다. 나의 어머니의 취미도 내 아내와 같이 자녀 옷 사입히고, 그 모습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라.....


 요즘 부쩍 아내는 등산에 꽂혀 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인 나는 등산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둘이 등산 갈 일이 거의 없다. 대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등산을 잘 다닌다. 아내가 등산에 필요한 옷이나 장비들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아이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자신의 삶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아 내심 기쁘기도 하다. 같이 가지는 못할지언정 나름 최선으로 도와주고 있다. 때론 아이도 하루 종일 대신 봐줄 때도 있다.


 최근에는 내 생일이어서, 몇십만 원 정도의 돈을 선물로 받았다. 물론 내가 가지고 싶은 선물도 좋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아내를 위해, 애플 워치 SE 모델과 좋은 스포츠 선글라스를 사주었다. 그게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었다. 아내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라.... 남편인 내가 등산을 싫어하더라도, 등산하는 아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지하고, 도와주고, 같이 못 다닐지언정 지원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회복을 얻고 에너지를 얻는 것을 서로 다르다고 방해하지 말거나 비난하지 말고, 서로 취향 존중하면서 도와준다면... 화목한 결혼 취미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직업적 윤리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면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주고, 때론 지원해 준다면, 취존이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마!"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언어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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