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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May 09. 2024

마흔 넘어 읽기 시작한 자기 계발서

나는 자기 계발서를 번역하면서도 자기 계발서를 끔찍이 싫어했다.


왜 그랬을까? 자기 계발서가 지닌, 시대영합적이고 뭔가 너무 뻔한 소리들이 듣기 싫었던 걸까.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고 할 때 비치는 이미지가 싫었던 걸까.


지난 10년 동안 소설이나 에세이만 주야장천 읽었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그런 책들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랬던 내가 올 3월부터 바뀌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자각이 온몸을 관통할 무렵이라 그랬을까, 자기 계발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밀리의 서재 책장에는 자기 계발서가 가득 찼다.


자기 계발서는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예전에 자기 계발서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남 얘기, 남의 세상이라 치부한 건 실천할 의지도,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삶을 원치 않는다면, 뭔가 변화를 원한다면,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계발서는 실천 의지가 불끈하던 나에게 딱 필요한 약이었다.


그렇게 아래와 같은 책을 두세 번씩 읽어나갔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

<월싱킹>

<역행자>

<부의 확신>

<레버리지>

<부의 추월차선>

<더 마인드>

<나는 4시간만 일한다>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역시나 예전의 내 자아가 고개를 쳐들며, 별 얘기 아니네, 다 똑같은 소리네,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두 번 읽으니 뼈를 때리는 말들이 나에게 그대로 와서 박히는 게 아닌가. 그전에는 그냥 넘겼던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나를 위해 쓰인 기분이었다.


난 책을 빨리 읽는 편이고 그래서 굉장히 많은 책을 읽는 편이었으나 돌아보니 내 안에 남은 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읽어보자 생각한 건데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온 기분이었다. 책은 그대로이지만 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일 테다. 세상의 절반을 무시한 채 살았던 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어마어마한 파도처럼 한번 나를 덮치자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 책 저 책 흡수하기 시작했다.



물론 소설을 향한 나의 사랑은 변함없다. 나에게 가장 큰 위안과 설렘, 휴식을 안기는 건 여전히 문학이다. 마찬가지로 책 번역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돈을 벌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한 나의 경력은 분명 나에게 더 큰 기회를 안겨주고 있다.


책을 좋아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세상과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등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숙명처럼 받아들인 채 지냈던 것 같다. 나의 삶은 나의 생각에서 나오는 건데.


그래서 더 많은 세상을 공부하는 중이다. 덕업일치가 될 수 있도록,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직업=나였던 세상에서 벗어나, 직업 없이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에 뛰어들어보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다양한 재능들을 합쳐 더 큰 기회를 노려보고 싶다.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버는 게 목표가 아니다.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나란 사람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다. 그렇다고 무작정 나를 갈아 넣어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닌다.


지난날의 나는 너무 애쓰며 살아왔다. 열심히만 살아왔다. 그게 정답이라고 누가 말해준 적도 없는데 그냥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더 똑똑하게 일하고 살아가는 걸 보고 아차 싶었다. 그들에게 배울 수 있다면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성장은 멈춘다.


다행히 새로 도전한 일들이 성과가 나고 있고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자라나고 있다. 이제야 살맛 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라고 스스로 선을 긋지만 않는다면 세상에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일할 수 있는 방법도 넘친다. 공부하자.


혹시 나처럼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평소에 하지 않았던 짓을 해보기 바란다. 그 한 걸음이 새로운 길로의 출발점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내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24년 3월 8일. 다시 태어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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