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대통령보다 부러운(?) 인생을 살게 된 사연
나는 남편을 '암편'이라고 불렀었다.
뭐 그밖에 남의 편, 웬수, 같이 사는 남자, 하숙생 등 남편을 지칭하는 말은 많으리라.
(이 시대 남편들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말이다)
발암.
사전적 의미로는 '암이 생기다'. 또는 '암이 생기게 하다'
성질 급한 내가 뒷목 잡게 만드는 이 남자.
그렇다.. 내가 고른 내 남편이다.
아이들도 서로 "엄마~엄마~" 불러대서 정신없는데 "여보~여보~"를 연신 외치며 나를 부르는...(막상 가면 '그냥'일 때가 많다)
"여보, 내가 뭐 하나 얘기해줄까?"
이젠 심지어 별로 안 궁금하다! 하지만 예의상
"뭔데?"
역시 다 알고 있는 이야기 거나 별 일 아니다... 으윽
공포영화를 보면 꼭 등장하는 발암 캐릭터들이 있지 않은가.
정말이지 다시 봐도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 같은 느낌이다.
보기만 해도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 같게 하는 이 남자와 왜 결혼했을까?
그 당시 나는 건설회사의 직원이었고, 그 사람은 하청업체 사장님이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해서 그런 건지 현장 사람이라 그런 건지 현장 일 외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어야 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답답해서 내가 다 처리했고, 손이 많이 갔던 사람이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다중지능 이론인가, 그걸로 본 나는 헌신 주의자더라. 에잇..)
그때만 해도 성실하고, 순박한 시골청년(?)인 줄 알았다.
나를 꼬실 땐 일 끝나면 나만 만나러 오길래, '결혼하면 집 밖에 모르겠구나.'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
순박해 보이던 시골청년은 사실.. 한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놀기도 열심히 하더라.
취미가 많으니 당연히 모임도 많다.
당구 좋아하지. (고등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도 나갔던 실력이라고 함)
낚시 좋아하지. (한가할 때 낚시 갈 장소 물색)
골프 치지. (골프여행도 자주 간다;;)
카드나 고스톱 좋아하지. (놀음도 잘함-_-)
게임이나 내기 좋아하지..
정말 아내들이 싫어하는 취미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 신랑은 다 한다.
아이가 셋이나 있다는 걸 까먹은 사람처럼 자유롭게 다~한다.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싶겠지만 그것도 이유가 다 있다.
흔히 겁을 상실한 사람을 두고 '간덩이가 부었구나?' 하는데, 이 남자.. 건강검진 때 보니 간이 큰 남자였다.
나 같으면 진작 이혼했다고?
나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랑에 대한 미움으로 아이들을 망칠 뻔한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이해가 갈 것이다.(이 이야기는 다음에..)
나의 시간과 감정을 미워하고 싸우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왜냐. 그 영향이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갔던 걸 경험했으므로;;
내가 겪은 시행착오들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양한 노하우들이 생기기도 했고, 그것이 곧 여유가 되었다.
아이들을 대하듯이 남편을 대해보았다. AB형인 우리 신랑은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역시 자칭 '독박 육아의 달인'인 나는 연기를 잘한다. 영혼 없는 발연기인데도 잘 먹힌다. (발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에..)
다들 여기까지 들으면 내가 천사표(?) 같겠지만 나도 장난 아닌 여자이다^^
남편이 한 창 골프에 빠졌을 때는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일한다고 하고 가다가 걸린 적이 있었다.
"나 왔어~"하며 스윽 내 앞을 지나가던 순간, 지독한 담배냄새 사이로 낯선 샴푸 향기를 맡았다.
"잠깐!! 이리 좀 와 봐!"
꾸물꾸물 거리는 신랑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내리며 킁킁.
"이거 우리 집 샴푸 냄새가 아닌데? 어디 갔다 왔어?"
그렇게 한 바탕하고, 다시는 거짓말 치지 않겠다는 신랑의 각서는 코팅해서 화장실에 붙여두었다. 볼 일 볼 때마다 보며 반성하라고. 푸하하
신랑의 쫄은(?)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ㅋㅋㅋ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지 않은가?
그때 이후로 나는 간다고 뭐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거짓말하면서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달아 가는 건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졌는지 일주일에 두 번은 일찍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더라.
일찍 와서 놀아주는 방식이 맘에 안 들지만 잔소리 금지~~!
술도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거라 생각하고 그냥 두는 것이다. 실제로 아주 조금 줄은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잦은 술자리.. 유지하고 있는 인격인지 인품... 은 개뿔. 볼록 나온 배가 심히 걱정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모임을 다녀온 신랑이 이야기했다.
"여보, 00 모임 박 00 있잖아? 걔가 그러는데 대통령은 여태껏 부러운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는 부럽대."
".... 그... 그래?" 하고 어이없어서 웃기만 했다.
상황은 이랬다.
"오~길 사장~오랜만이야. 애들은?"
"어~오랜만. 애들? 집사람이랑 집에 있지"
"와, 나는 이 모임 나온다고 어제 저녁해 주고, 설거지했는데도 방금 전화 와서 일찍 오라고 난리던데"
"아 기냐? 우리 마누라는 아직 전화가 없네. 야. 나는 10년 살면서 설거지한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와.. 진짜? 야 근데 너 그러다 이혼당해..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너 지난주에 골프여행도 다녀왔잖아? 그것도 뭐라고 안 해? 우리 마누라는 골프여행 가려거든 이혼 각서 쓰고 가라던데.."
"야 이제는 우리 마누라보다 작업자들 눈치 본다. 사장님 또 가냐면서~"
"이야... 낚시 가고 싶으면 낚시 가고, 골프 가도 뭐라고 안 하고.. 내가 진짜.. 대통령은 솔직히 부러운 적이 없었거든? 야.. 근데 너는 진심으로 부럽다! "
나중에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그러더군...
왜 길 사장을 저리 키웠냐(?)면서!! 너무 부럽다고 ㅋ
음..
일단 남편은 육 남매 중 장남의 장손으로 자랐다. 막 자랐을 것 같은 생김새와 달리 그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 무서운 거 없이 이쁨만 받고 컸다나 뭐라나.
그리고 욕을 많이 먹는다. 독불장군이라고 ㅋ
그런데도 사람들이 좋아한다. 엉뚱하고 재밌어서(이 부분이 나랑 코드가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멀티가 안 되는 관계로 많은 것을 바라지도 시키지도 않는다.
"여보 세탁기에서 세탁물 빼서 건조기에 넣고, 빨래 개 놔."
우리 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알고 보니 학창 시절 별명 '붕어'.
충격적이었다. 정확해서
우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그냥 내뱉는다. 또 자기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말은 지우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스트레스 지수도 떨어지다 못해 없는 상태..ㄷㄷㄷ
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란 걸 나는 안다. 그러니까 여태 살겠지만 ㅋ
나는 남편에게 일을 시킬 땐 딱 한 가지씩만 시킨다.
밖에서 일을 해보니 남편이 조금은 이해가 된달까?
자신이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 직원들. 요즘은 낮에 카페 회식을 한다지만 글쎄다.
일을 따내기 위해 또는 수금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접대들..
전 같으면 "너만 초보 아빠냐, 나도 초보 엄마다. 그리고 나도 일해. 왜 너만 힘들다고 그래? 왜 나만 해야 돼?" 했을 텐데..
어느 날 술에 떡이 돼 들어오는 그 사람을 보는데 그냥 짠했다. 그때부터였었나~ 나의 잔소리는 잠시 넣어두기로 했다.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잘 적용하는 편이다. 그게 육아가 됐든 일이 됐든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엄마가 공부하는 것을 꼭 추천한다.
신랑은 대외적인 것을 잘하고, 단순하다. 그래서 뒤끝이 없다.
시키는 것은 잘 하지만 잘 까먹으므로 2-3번 화내지 않고 반복해야 한다.
여기서 '화내지 않고'가 중요하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
서로 잘하는 걸 잘 하자!
그리고 나에게 맞춰서 변화시킬 생각 말고, 나부터 변하자!!
내가 변하니 아이들이 변하고, 아이들이 변하니 남편도 변하더라.
이것은 실화다!
이게 내 남자와 아이를 키우는 나만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