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일 또는 무슨 날. 누군가는 의미 없다고 하지만 난 이런 날에 의미를 두고 챙긴다. 세상에 이런저런 의미를 둘 수 있다면 많이 많이 두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생일을 비롯 무슨 날에 의미를 두지도 챙기지도 않던 남편도 나의 끈질김에 어느덧 그만의 방식으로 챙기기 시작했다.
3월 14일 화이트데이.
밸런타인데이랑 화이트데이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남편은 여자가 남자에게 챙겨주는 밸런타인데이날 날에게 향수를 선물했고 난 핀잔을 줬다. 그리고, 어제 화이트데이였던 남편은 퇴근 후, 나에게 초록색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액수도 확인하지 않던 나에게 남편은 화이트데이 겸 연말정산 환급금액 반띵이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봉투 속 현금을 확인했고 나는 활짝 웃었다.
직장 생활을 20년 가까이했던 나는 작년까지도 연말 정산을 했었고, 연말 정산 환급금을 받았다. 월급에서 많이도 떼어가는 각종 세금과 기타 돈들이 항상 불만이었는데 3월에 돌려받은 환급 금액을 보고는 그동안의 불만이 한순간에 사라졌었다. 모든 직장인이라면 알겠지만 연말 정산 환급금은 월급 외의 돈으로 정말 하늘에서 떨어진 공짜돈인 거 같다. 사실은 그게 아님에도.
나는 이제 연말 정산이 아닌 종합소득세 신고를 한다. 지난해 4월에 퇴사를 하고, 5월에 종소세 신고를 했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종소세를 꽤 냈고 세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절실히 느꼈다. 플러스, 내가 잘못 신고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같이 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종소세 신고가 곧 있구나, 5월이 다가온다, 헉. 회사를 다닐 땐 월급 외에 혜택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로지 모든 세금과 각종 금액을 빼고 통장에 찍힌 돈만 보인다. 내 월급에서 나가던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이 회사와 반띵이라는 것도 신경 써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퇴사 후, 나는 100% 내 돈으로 그 둘을 충당하고 있다. 회사 다닐 때 월급명세서를 신경 써서 보는 건 딱 1년에 한 번이다. 매년 이뤄지는 연봉 협상 후에 받는 월급명세서는 내 연봉에서 실제 내가 받는 세후 월급이 얼마인지와 그 외 빠져나가는 돈들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는 1년 동안 월급명세서를 보는 일은 없다. 물론, 이건 회사마다 다를 것이다. 17년 6개월을 다녔던 D사와는 달리 작년에 그만뒀던 E사는 월급 체제가 달랐다. 분기별로 인센티브가 있었고 분기별로 받는 인센티브도 퍼센트가 달랐다. 그래서, E사의 월급명세서는 분기별로 봤었다.
어제 남편이 갑작스럽게 내민 연말정산 반띵 금액에 난 여전히 공짜돈처럼 좋아했고 갑자기 직장인들이 조금 부러웠다. 다들 얼마나 받았으려나? 물론 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 내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다시 회사라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연말정산 환급금을 받는 일은 없겠지? 어디 그뿐이랴, 프리랜서라는 직업으로서는 진급도 연봉 인상도 없을 것이다. 연초면 지인들의 진급 소식, 연봉 인상에 거기다 인센티브 소식까지 들으면 내가 선택한 이 길임에도 그들이 부럽다.
자, 자, 정신 차리자.
잠시의 부러움을 접고 나는 나의 길을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