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집밥이 화두다.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이 재택 학습을 하게 되면서 삼시 세 끼를 챙기는 것이 큰일이라고 하더라. 나는 1인 가구일 뿐이지만 우리 집 식탁도 이전과는 꽤 달라졌다.
나는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다. 본가의 식탁에서는 반찬 투정은 금지였다. 워킹맘으로 엄마가 아침과 저녁을, 주말에는 삼시 세 끼를 챙겨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엄마는 아침에도 꼭 밥과 국으로 식탁을 차리셨다. 그러니 반찬 투정은 하지 않는 것이 도리였다. 덕분에 나는 반찬이 달걀 프라이뿐이어도 잘 먹는 사람으로 자랐다. 초등학교 때는 날달걀과 간장, 참기름 만으로도 밥을 잘 먹었었다. 지금도 그때 그 달걀 비빔밥이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확실히 1인 가구가 된 이후로도, 나는 밥을 잘 챙겨 먹는다. (차마, 잘 차려먹는 다고는 못하겠다. ) 1인 가구의 식탁의 미덕은 간단하게 만들어서 빠르게 치울 수 있었야 한다는 것이다. (설거지 거리가 적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 햇반보다는 직접 지은 밥을 좋아해서 쌀을 씻어서 전기밥솥에 앉히고 메인이 될 메뉴를 요리하거나 사 와서 먹는다. 메인 요리는 카레일 때도 있고 김치볶음밥일 때도 있다. 간단히 달걀말이이거나 소시지일 때도 있다. 근처에 식당에서 사 온 육개장이나 시장에서 사 온 돈가스도 단골 메뉴다. (집에서 튀김 요리는 하지 않기 때문에 튀겨놓은 것을 사 먹는다.)
배달은 잘 시켜먹지 않는다. 1인 가구 이기전에 동생들과 꽤 오래 살기도 했지만, 치킨이 정말 먹고 싶거나 하는 것이 아니면 배달은 시키지 않는다. 1인 가구의 조심성이라고 하겠다. 요즘 같이 배달 음식 시켜먹기가 간편한 시대에 배달을 잘 시켜먹지 않는 것은 핸디캡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주말에 엄마가 보내 준 김치에 갓 지은 밥을 먹는 것이 큰 낙이었다. 대부분 식사를 밖에서 하게 되니 그렇게라도 집밥을 먹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한 집콕이 길어지면서 점점 주말 삼시 세끼가 힘들어지고 있다. 주말 점심, 저녁 중 한 번, 많게는 두 번 정도는 있었던 약속이 없어지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주말에 많으면 6끼, 적으면 4끼를 꼬박꼬박 무언가로 챙겨 먹으려니 피로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티브이에서 본 레시피를 따라 카레며 고추장찌개 따위를 해 먹고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었는데 시들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냉동식품에 눈을 돌리게 됐다.
@@고, %%크 같은 마트에서 파는 냉동식품을 냉장고에 쟁여두기 시작했다. 1인 가구에게는 즉석식품이나 냉동식품을 사 먹는 것보다 식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되었다. 식재료는 늘 남아서 냉장고 한켠을 차지하다가 음식물 쓰레기행이다. 마트에서 소고기 미역국 한팩을 사 먹는 것이 훨씬 저렴한 것을 자연히 알게 되었다.
거기에 요즘에 나오는 냉동 만두들은 하나 같이 다 맛있는지! 냉동 주먹밥도 데워먹으면 그렇게 맛있다. 냉동이라고 믿기지 않는 퀄리티다. 냉동 치킨에다 멘보샤까지 제품으로 나와있다. 도무지 부지런을 떨 마음이 들지 않는 날에는 마트에서 산 냉장, 냉동식품만으로 삼시 세 끼를 풍성하게 먹을 수 있다.
냉동만두를 찜기에 데우고 시판 국을 데운다. 마트에서 산 포장김을 접시에 담고 역시나 마트에서 산 김치를 꺼낸다. 밥솥에서 밥만 푸면 한상 차림이 완성이다. 이쯤 되면 집에서 먹으니까 집밥인 수준이다. (집에서 만들어서 집밥이 아니라!) 집밥과 외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점이다.
이렇게는 집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싶어서 한 가지 반찬을 추가해본다. 명란을 넣은 달걀말이다.
달걀을 3개 풀고 잘게 썬 양파와 쪽파, 당근을 넣어서 다시 잘 풀어준다.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팬에 부어 직사각형 모양으로 부친다. 달걀이 살짝 익어 굳어질 때쯤 명란을 한쪽 끝에 두고 살살 넘겨가며 달걀말이 굴리며 익힌다. 이 부분이 조금 어렵다. 두툼한 달걀말이를 만들기 위해 다시 달걀물을 붓고 한번 더 말아준다. 다 익힌 후에 썰어주면 완성이다.
오늘 또 이렇게 주말의 한 끼가 지나갔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어서 이전처럼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