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밝았다.
지난해, 많은 것을 계획했었다.
엄마 환갑을 맞아 해외 가족여행을 준비했고, 퇴근 후 도예 수업을 들을 계획이었다.
출근 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습관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모든 것이 다 무산되었다.
2020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지지부진한 한 해였다.
그러다가 이대로 2020년을 보낼 수 없어 바짓가랑이를 잡아 보기로 했다.
12월, 생애 처음 신춘문예에 소설을 투고했다.
2020년 초부터 코로나 때문에 주말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 있던 책들을 다시 짚어 들었는데,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 책이 내 창의력에 불쏘시개가 되어주었는지 소설 소재가 떠올랐다.
나는 영감이 떠오르면 소설을 쓰는 스타일인데, 요즘 '영감'님이 영 오지 않으시더니 오랜만에 오셨다. 그 뒤로 세 달에 걸쳐 단편 소설을 썼다. 어쩌다 보니 신춘문예 소설 분량에 얼추 맞아떨어졌다. (신춘문예의 단편소설 분량은 11포인트로 A4 11장 정도다. 200자 원고지 80매가량의 분량이 대체로 그 정도 페이지다.)
그리고 스티븐 킹이 책에서 조언한 대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소설을 묵혔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킹은 소설을 쓴 뒤에 친한 친구들에게 보여주거나 하지 말고 글을 서랍 속에 6주 정도 묵히라고 조언한다. 지적을 받으면 그 상처가 크고 칭찬받으면 자만한다는 것이다.
6주보다 좀 더 오래 하드에 묵혀두었다가 친구 한 명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쓴 글을 파일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을 싫어한다. 저작권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걱정한다기보다는 내 글이 디지털 파일이 되어 세상 어딘가를 떠도는 것이 싫어서다. 예전에는 소설을 쓰고 스스로도 잘 썼다 싶어 흥이 날 때는 메일로 첨부파일로 보내서 평을 듣기도 했는데 요즘은 출력물로 보여주는 것을 선호한다. 내 글을 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뻘쭘하지만 생생한 평을 들을 수 있고 누군가의 메일에, 누군가의 하드에 영원히 남아있을 까 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 맘이 편하다.
친구와 만날 때 소설을 출력해서 읽어 달라 부탁했다.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는 표정을 보면서 초조하게 앉아있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내 글을 다 읽은 친구는 칭찬과 조언을 고루 해주었다.
먼저 재밌다고 칭찬해주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최고의 칭찬이다. 그리고 소설 주인공의 심리에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이야기해 주어 적극 반영하여 수정하기로 했다.
그리고서는 한번, 두 번, 세 번 퇴고를 했다. (퇴고를 하는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고 하면 핑계일까?)
난 자기애가 강한 것인지 내 글의 문장을, 문단을 완전히 들어내거나 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퇴고가 힘들었다. 분명히 불필요한 부분이 있을 텐데 내가 쓴 글은 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아깝다. 그래도 최대한 타인의 눈으로 냉정하게 내 작품을 보려고 노력하며 퇴고를 했다.
맞춤법까지 검토를 마친 뒤 그만 제출하기로 한다. 제출 기한까지 고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이제 그만 멈추기로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제출 마지막 날까지 보고 또 보고, 고치고 또 고치겠지.
그렇게 완성된 원고를 2부 출력해서 우체국으로 가서 부쳤다.
12월, 한 해가 다 가기 전 어느 날, 어떤 의식처럼.
결과야 어떻든지, 올 한 해 내 의지로 무언가를 하나 이루었다는 것에 후련한 마음이 든다.
아마도 당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혹 당선되더라도 정말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신춘문예에 당선되더라도 그 한 번으로 끝나는 작가가 많다고 한다.
나에게 신춘문예 투고는 오래된 짝사랑에게 보내는 연서다. 답장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연서, 답장이 오더라도 나의 사랑에 대한 회신보다는 그저 받았다,라고 한 줄 적혀있을 뿐일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글쓰기를, 특히 소설 쓰기를 사랑한다. 왜 쓰냐고 물으면 그냥 좋아서, 재미있어서라고 밖에 답하지 못하겠지만 그저 좋아서 쓴다.
신춘문예에 붙든 떨어지든 난 계속 쓸 것이다. 이렇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마음속 질문에 답하지 않은지 오래다. 내 글이 의미가 없더라도 쓰면서 느끼는 재미가 나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십 년 동안 한 가지를 취미로 하다 보면 무언가를 이룬다고 한다. 글쓰기가 십 년의 취미가 되기에는 아직 몇 년이 남아있다. 그 시간을 채워가다 보면, 내 글로 무언가가 되어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메모장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