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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끼 Aug 09. 2020

7살 인생의 고구마 맛탕

나의 음식에 대한 첫 기억은 고구마 맛탕이다.

7살 때 유치원을 다녔었다. 당시 유치원 특별활동 중에 하나로 고구마 맛탕 만들기를 했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불을 만지게 하는 것은 어려우니 설탕을 녹인 것에 고구마를 굴리는 정도나 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생처음으로 먹어본 맛탕은 너무나 맛있었다. 고구마의 달콤함에 설탕의 달콤함이 더해졌으니 황홀한 맛이었으리라.

바로 이런 느낌!

그 맛을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다시 맛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레시피를 달달 외웠다. 하루 종일 레시피를 생각하고 유치원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레시피를 외웠다. 그렇게 집에 가서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 치마 꼬리를 잡고 외운 레시피를 줄줄 이야기했다.     


오늘 유치원에서 고구마 맛탕을 만들었는데 엄마, 어떻게 하는 거냐면,


하지만 엄마는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고구마 맛탕도 집에서 해주지 않았다. 아, 그때의 서러움이란.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당시에는 애가 둘 뿐이었지만 2년 뒤에는 셋이 된다. 엄마가 직장에 다녀와서 저녁을 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치는 일이다. 딸이 옆에서 조잘거린다고 어이구, 그러냐. 엄마가 만들어 주마,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 맛있는 걸 엄마도 먹어봤으면 좋겠다, 또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는 이미 아는 맛일 텐데,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조그마한 머리통으로 레시피를 줄줄 외워온 7살짜리를 생각하면 귀엽기도, 안쓰럽기도 한 마음이 든다.


다 자란 뒤에 집에서 고구마 맛탕을 한두 번 해 본 일이 있다.

nadeco70@pixabay.com

고구마를 잘 씻고 껍질을 정리하고 깍둑썰기 해서 준비한다. 그리고는 기름을 두른 팬에 튀기듯이 굽는다. 튀기면 좋겠지만 집에서 튀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올리고당과 설탕, 물을 섞어서 불에 녹인다. 그리고 튀긴 고구마를 그 시럽에 굴린다. 레시피만 두고 보면 간단하지만, 끈적이는 설탕과 올리고당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더라. 이 끈적이는 달콤함이 7살 꼬마를 사로잡은 것이겠지. 아마 엄마는 내가 고구마 맛탕 레시피를 외워온 일을 잊으셨을 것이다. 여름휴가 때 집에 가면 정말 오랜만에 고구마 맛탕을 해서 먹자고 엄마에게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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