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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ttleJune May 01. 2021

가치 있게 그리고 낭비 없이

루시드 폴의 '고등어'

며칠 전 주문한 택배가 문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문 앞에 놓인 스티로폼 박스를 가져와 열어보니 손질되어있는 생선입니다. 

최근 들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손질되어 있는 식재료를 고르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쓰레기가 비교적 적게 나오기도 하고 홀로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으며 번거로운 일들을 줄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급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 보니 어느덧 저녁입니다. 냉장고에 넣어둔 생선들 중에 고등어를 꺼냈습니다. 어젯밤 산책길에 사놓은 상추와 같이 먹어야겠습니다.


가스레인지에 작은 사각 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을 넉넉하게 두릅니다. 프라이팬 위에 손바닥을 올려보니 어느 정도 달궈졌습니다.

고등어 세 조각을 넣고 유리 뚜껑을 닫습니다. 기름에 튀겨지듯 굽는 소리가 납니다.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퍼집니다.

식탁에 다른 반찬을 올려놓고 프라이팬에 돌아와 생선구이를 뒤집어봅니다. 맛있게 구워진 껍질과 고등어 특유의 무늬가 보입니다.


갑작스레 고등어와 관련된 몇 가지 노래가 떠오릅니다. 

김창완 씨의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가 떠오르며 가사와 멜로디가 익숙하게 머릿속을 지나갑니다.


그러다 문득 와이프와 연애하던 시절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너 생선구이 좋아하지? 직접 시장에서 생선 사본적도 있었어?” 

생선구이를 워낙 즐겨먹는 저는 좋아하는 생선들과 시장에서 봤던 신기한 것들, 묻지도 않은 조리법들과 맛집들을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러자 뭔가 알 수 없는 질문을 해옵니다. 

“그럼 진열된 생선들 보면서 무슨 생각 들었어?”. 당황스럽습니다. 

어떤 생선을 고를지 싱싱한지 알이 들었는지 확인을 했을 뿐 어떤 생각을 깊게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황해서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는 저에게 와이프는 노래 한곡을 틀어 이어폰을 건넵니다. 

“한번 들어봐. 제목이 고등어래. 너무 슬프고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들려주고 싶었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버렸습니다. 노래 제목이 고등어라니. 게다가 너무 슬프다니. 별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듣다가 노래가 끝나 멈춘 후에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관심조차 없던 채식주의, 비건, 할랄푸드 같은 문화들이 어쩌면 조금 이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먹는 식재료가 적어도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그리고 나는 그 식재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지, 가치 있게 낭비 없이 조리하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선구이를 가져와 식탁에 놓으니 쌀과 상추, 김치에 들어간 젓갈도 눈에 들어옵니다.

생각이 많아진 탓인지 고등어구이의 한쪽이 거뭇하게 살짝 탔습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오늘은 감사하고 소중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시드폴 - 고등어 https://youtu.be/CRZ8YZmKd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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