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닥타닥 제주에서 3주 차
함께 여행을 하거나, 여행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낼 때... 참 별로인 경우가 있다.
좋은 곳을 가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으면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쉬이 웃지 못하는 얼굴. 그리고 함께하는 그 순간과 공간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고 자꾸 휴대전화 안 세상을 기웃거리는(업무든, 사적인 것이든) 사람이다. 애석하게도 그 둘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드러내는 것이 불편하고, 감추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인다.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의 친척이 물었다.
"00는, 집에서도 말 없지? 재미없지?"
나는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여자다. 거짓 없이 폭로한다.
"아니요! 얼마나 수다쟁이인데요~~ 밖에서만 조용해요."
집을 나서면 최대한 드러내기를 자제하는 남자. 크게 웃거나, 감탄하거나, 호들갑을 떠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래서 흥이 떨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기운이 넘치는 사람은 아닌데, 특별히 기운이 더 없어 보이는 날이 있다. 바로 여름! 무더운 여름에 남편과 야외를 돌아다니는 일은 마치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대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먼 길을 걸어야 하는 것처럼 난이도가 높다. 남편은 더위에 약하고,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더운데 습하기까지 한 날씨에 몹시 약하다.
이번 여행지의 강력한 후보로 제주도가 거론될 때, 나는 여러 차례 남편에게 경고했다.
"여름에는 제주도 진짜 습해! 괜찮겠어?"
그럼에도 어찌어찌하여 우리는 제주도로 오게 되었고, 2주를 지나 3주째 살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남편이 고백했다.
"여름에는 제주도... 진짜 아닌 것 같아."
덥고 습한 공기가 그를 감싸 안을 때면, 그는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해진다.
더운데 습하기까지 한 토요일 오후, 우리는 겁도 없이 야외활동을 선택했다. 덥다. 놀러 다니는 일이라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인 나도 지치는 날씨다. 그가 안간힘을 쓰며 날씨와 싸우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햇볕에 인상이 구겨져 있다가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순전히 나의 흥을 위해 제법 훌륭한 포즈를 취하면서 활짝 웃는다. 애쓴다. 그래, 고맙다. 오늘도 고생했다. 토닥토닥.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해안가에서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가 있었다.
얼마 전, 눈앞에서 생생하게 헤엄쳐가던 제주 돌고래에 관한 행사라 하여 가보기로 했다.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일반인들은 저 멀-리 주차를 해야 했다. 행사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타닥타닥!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위 속 아스팔트 위를 문어처럼 미끄러지듯, 아니, 너무 더워 정신이 미역처럼 흐물거린 채 행사장에 도착했다. 일요일 오후, 제주도를 찾은 여행자들과 돌고래를 사랑하는 제주도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양한 워크숍이 진행되고, 공연도 예정되어 있었다. 오예! 그런데 먼 길을 걸어오느라 목이 마르다. 일단, 음료수라도 한 잔 마시자. 아차! 개인컵을 가져오라고 했지?!
그랬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행사장 내의 음식과 음료를 구매할 사람들은 개인 식기와 컵을 가지고 오라던 공지가 그제야 떠올랐다. 다행히 우리처럼 개인컵을 준비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행사장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컵을 대여해주었다.
토마토 주스를 한 잔 마시고, 체험 워크숍 하나를 접수해놓고, 돌고래 사진전을 둘러보고 나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더위에 지쳤다. 바위에 걸터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붉은색 자루 포대를 들고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사람들. '비치코밍'이란 워크숍을 신청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만히 앉아 있기가 미안해졌다.
"우리도 저거 하자!"
*비치코밍: 'beach(해변)'과 'combing(빗질하다)'의 합성어로, 해변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보호 활동을 일컫는 말이라는 걸... 이 날 처음 알았다.
장갑과 포대를 받아 바닷가 근처로 내려갔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쓰레기들이 바위틈 곳곳에 끼어 있었다. 두 시간 전, 만조 때 밀물이 가져다 놓고 간 쓰레기들과 오랫동안 바위틈에 박혀 있었을 쓰레기들이 뒤섞여 있었다. 주웠다. 쉽게 주워지지 않아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가며, 바위틈에서 잡아당기고 끄집어냈다. 말로만 듣던 중국어, 일본어가 적힌 페트병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 날 우리가 보고 주운 쓰레기들 중 가장 많은 건 어획용 도구들이었다. 아마도 물고기를 잡는데 쓰였을 법한 깔때기들이 그렇게 많더라. 낚싯줄과 밧줄과 어망과 플라스틱 부표와 얽히고설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음이 씁쓸했다. 점심으로 먹었던 고등어 구이가 떠올랐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상업적 어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으려는 노력보다, 생선을 한 번 덜 먹으려는 노력이 바다를 살리고 바다에 사는 생물들을 살리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제주에 와서 먹은 고등어는 유독 맛이 있었다. 옥돔구이는 말해 뭐해. 갈치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덜 먹어야 한다니. 우리가 먹는 생선을 잡기 위해 수많은 돌고래들의 목숨이 터무니없이 희생당하고 있다니. 나는 무얼 선택하고, 무얼 행동해야 할까?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쉽지 않다.
자루가 금방 찼다.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남자에게 자루를 높이 들어 달라 했다. 그가 자루를 들어 올렸다. 그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루가 무거웠으리라.)
"됐어, 찍었어."
"내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건 안 찍혔지?"
응, 그런 건 카메라에 안 찍히지. 그러니까 글로 상세하게 적어야지.
오늘 저녁을 조금 간단하게 먹어야겠다.
내일 점심메뉴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아빠가 종종 말했다.
몰라서 못 한 건 용서가 돼. 그런데 알면서 안 하는 게 제일 나쁜 거야.
나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러면서 나는 무엇을 하지 않고 있을까?
행사의 하이라이트 공연이 시작되었다. 재활용품을 이용해 연주를 하는(정말, 천재가 아닐 수 없다! 감탄! 감탄!) 'HOOLA(훌라)'라는 팀이 공연을 하던 중...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 함께 외친 구호 하나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