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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Mar 02. 2023

브런치 알림 192개의 정체!

: 내가 가장 친절해야 할 사람

 잠이 달아나버렸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금세 잠이 들 것처럼 피곤했는데, 낮에 자전거를 탔던 다리가 쿡쿡 쑤셔대는 통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릴 때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 한참을 돌아다녀도 괜찮았다. 내리막길 과속방지턱에 걸려 자전거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던 날을 제외하고는,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는 늘어난 몸무게 때문인지,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한 탓인지 자전거를 한 번씩 타는 것도 쉽지 않다. 어쩌면 그 '한 번씩'이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타는 자전거가 더 쉬울 것 같다. 매일 타는 자전거가 되려면 안장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잠이 완전히 도망갔다.


 엊그제는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생각난 희재 때문에 잠이 달아났다. 희재는 며칠 전부터 머릿속으로 구상 중인 내 소설 속 인물이다. 그냥 별 의미 없이 떠올린 이름이었는데, 가수 성시경의 노래 제목이자 어느 유튜버와 래퍼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물 이름을 바꾸고 싶어졌다. 희재를 대신할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어둠 속 허공에 대고 눈알을 굴리다가,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종종 그런 밤이 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고, 그렇게 한 시간 즈음 뒤척이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 결국 책상 앞에 앉는 밤. 그런 밤이면 내가 아는 이들의 밤은 안녕한지 궁금해진다. 모두들 꿈나라에 잘 도착했는지, 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 있는 이는 없는지, 누구 아직 안 자는 사람? 넌지시 묻고 싶어도 묻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밤이 있을 테고, 며칠 전에는 엄마가 그랬던 모양이다. 엄마의 잠 못 이룬 지난밤을 알아차린 건, 다음날 아침 내 휴대전화에 떠 있는 브런치 알림을 확인하고서였다.

 '브런치 알림 192개' 으응? 헐!


 브런치 알림이 뜨는 경우는 크게 다섯 가지다. 

 ①내가 구독하는 이웃 작가님들의 새 글이 발행되었을 때, ②내 브런치에 새로운 구독자가 생겼을 때, ③내가 발행한 글에 누군가 좋아요를 눌렀을 때, ④혹은 댓글이 달렸을 때, ⑤글의 조횟수나 '좋아요' 수가 일정 단계를 넘을 때 알림이 뜬다. 각각의 알림은 현재 시각으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경우) '00 분 전', (한 시간이 지났을 경우) '00 시간 전' 등으로 이벤트가 있었던 대략적인 시각을 알려준다.


 192개의 알림을 보고서 처음 든 생각은, 얼마 전에 발행한 글이 포털 사이트에 올랐나? 내 글이 인기글이 되었나? 내 희망사항을 떠올렸다. 그러지 않고서야 브런치 알림이 하룻밤 사이에 100개 이상 뜰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192개 알림의 정체는 놀랍게도...... 모두 엄마였다. 


 '00님이 라이킷했습니다.' (글 제목/7시간 전)

 '00님이 라이킷했습니다.' (글 제목/6시간 전)

 '라이킷수가 00을 돌파했습니다!' (글 제목/6시간 전)

 '00님이 라이킷했습니다.' (글 제목/5시간 전)

    ....... 중략.........

 '00님이 라이킷했습니다.' (글 제목/2시간 전)

 '라이킷수가 00을 돌파했습니다!' (글 제목/2시간 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엄마는 7시간 전부터 2시간 전까지, 그러니까 밤새 내가 그동안 발행했던 100개가 넘는 브런치 글에 '좋아요'를 다시 눌러놓았다. 응? 밤새 잠 안 자고 내 브런치 글을 읽었다고? 어머니! 간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예?!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젯밤에 뭐 했어?"

 엄마의 대답인즉,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안 와서 일어났단다. 심심해서 막내딸의 최근 브런치 글을 다시 읽었단다. 재미가 있었단다. 그래서 이전 글을 하나 더 읽었단다.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단다. 내친김에 이전 글의 이전 글, 이전 글들을 읽다 보니 100개가 넘는 글을 거의 다 읽게 되었단다. 날이 밝았고,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몇 개 글은 마저 못 읽었단다.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브런치 알림 체계를 모르는 엄마는 오히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했다.

 "좋아요는 예전에 다 눌러놓고서 왜 다시 눌렀대? 어차피 한 번 밖에 안 눌러져."

 "몰라? 눌러보니까 다시 눌러지더라."


 엄마와 전화를 끊고 웃음이 나왔다. 밤새 내 글을 하나씩 읽으며 열심히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을 엄마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서, 그렇게 밤새 차곡차곡 쌓였을 192개의 알림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런 열성 구독자가 또 있을까? 내 글을 이토록 재밌게 읽고 또 읽어줄 독자가 앞으로도 과연 있을까?

 휴대전화 화면으로 읽는 브런치 글은 한눈에 문단을 볼 수 없어 행간도 잘 읽히지 않고, 이어지는 문장을 한없이 따라가다 보면 눈이 아팠을 텐데. 나도 전부 다시 읽지 못하는 내 글을 엄마는 어떻게 읽었을까. 엄마는 분명 내 브런치의 VIP 아니, VVVIP 구독자였다. 


 VVVIP 구독자를 위해 필자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할 수 있는 몇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

 평소 글을 쓸 때, 문단을 잘게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내용상 한 문단으로 묶어야 할 문장들은 최대한 이어 쓰되, 문단 안에서 의미를 구분하고 싶을 때는 줄 바꾸기를 사용하곤 한다. 문단을 자주 나누면 언뜻 보기에 가독성이 좋을 것 같지만,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생각하면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다. 물론 정답은 없으며,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를 테고, 어디까지나 글 쓰는 이의 선택이지만, 오늘은 휴대전화 화면으로 이 글을 읽을 엄마를 위해 가능하면 자주 문단을 바꿨다. 온전히 단 한 명의 특별한 구독자를 위해 문단을 잘게 쪼갰다.


 둘)

 내 글에는 짧은 문장보다 호흡이 긴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간결하고 의미전달이 정확한 단문의 매력과 중요성을 잘 안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호흡이 긴 문장들이 주는 리듬감이 좋다. 그러려면 긴 문장이 막힘없이 술술 읽히도록 잘 써야 하는데, 그건 또 쉽지가 않다. 그래서 써놓은 문장들을 읽고, 또 읽어보며 막히는 부분이 없는지 문장 다듬기를 반복한다. 줄임말이나 전문용어도 최대한 풀어쓰려고 한다.


 셋)

 무엇보다 좋은 글을 쓴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니, 나는 최선을 다해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글을 쓴다.



 오래전, 모 지방기상청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어쩌다 보니 퇴근길에 청장님을 내 차로 모시고, 중간 목적지에 내려드려야 할 일이 생겼다. 당시 지방청장님이 엄마 또래의(엄마보다 조금 더 젊으신) 여자분이셨다. 인품 좋고 아랫사람들에게도 따뜻하게 잘 대해주시기로 소문난 분이셨는데, 그래서 더 긴장이 되었다. 안전하게 잘 모셔다 드리고 싶었다.


 당시 내 자동차는 클러치를 밟아 기어를 직접 변경하는 수동기어 자동차의 특성 때문에 승차감이 그리 좋지 않았다. 기어 변속 시 본의 아니게 급출발, 급정거를 할 때와 같은 흔들림이 발생한다. 반면 수동으로 기어를 바꿀 수 있는 덕분에 999cc 엔진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속도를 내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부-앙----!! 평소에는 그것을 즐겼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청장님이 타고 계셨다.

 클러치를 최대한 부드럽게 밟고, 뗐다. 조금 전 기어 변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내 차가 이렇게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한 차였나? 스스로 의심이 들만큼 심혈을 기울여 클러치와 엑셀, 브레이크 페달 사이에서 발재간을 부렸다. 청장님은 몹시 만족해하셨다. 00 씨, 운전을 정말 편안하게 하네. 고마워요. 덕분에 잘 왔어요.


 청장님을 내려드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떠올랐던 건, 청장님의 반응이 엄마와 참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00아, 천천히 가. 00아, 운전 좀 살살해. 엄마가 타고 있을 때 나는 망나니처럼 운전을 했다. 우리 엄마도 스릴을 좋아하지! 엄마, 어때? 이런 것도 된다! 자랑이라도 하듯 속도를 내고, 끼어들고, 난폭운전도 했다. 한마디로 험한 꼴을 다 보여드렸다. 엄마가 내 차를 탔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불안함을 느끼는지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왜 청장님은 편안함을 느끼고, 엄마는 불안함을 느껴야 했던가. 그날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엄마를 청장님 모시듯 하겠다고. 물론 그 후로도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자면, 청장님은 불편했고 엄마는 편했다. 청장님이 내 차에 탄 건 그때 한 번 뿐이었고, 엄마는 내 차에 셀 수 없이 자주 탄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가장 우선으로 여긴다.

 그런 엄마를 매번 뒷전으로 미뤄놓은 건 나였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했다. 

 192개의 브런치 알림을 받고서, 나는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가장 친절해야 할 사람, 고맙다 미안하다 가장 잘 표현해야 할 사람,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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