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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Jun 29. 2023

열심뿐인 소리는 아름답지 않다.

: 내 글이 열심뿐인 소리일까 두려웠다.

 지난봄, 그리고 초여름이 지나는 동안 모 대학교 도서관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방앗간을 찾는 참새마냥 틈나는 대로 갔다. 자주는 갔지만, 엉덩이 근력이 부족한 탓에 3시간 이상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날은 1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깝다 생각하면서도 계속 드나들었다. 짧으면 짧은 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러는 사이 단편소설 한 편이 완성되었다. 고르고 골라 선택한 단어들과, 고치고 고쳐 다듬은 문장들이 하루하루 쌓이더니, 어찌어찌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야기를 쓰는 동안에는 그저 이야기에 빠져 열심히 썼는데, 다 써놓고 보니 내가 쓴 글이 객관적으로 어떤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우스꽝스럽고, 형편없는 것 같다가도 봐줄 만한 것 같아서, 얼마간 가만히 묵혀두기로 했다. 


 열심뿐인 소리는 아름답지 않다.


 몇 해 전, 어쩌다 보니 교회 성가대에 들어갔다. 내 가창력과는 무관한 선택이었다. 내겐 타고난 가창력도 없거니와, 어릴 때부터 소심한 성격 때문에 늘 목소리가 목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덧붙여 일찌감치 경험한 흑역사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단짝 친구의 손을 잡고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합창대회에 나갔다. 소프라노를 맡아줄 또 다른 친구가 있었는데, 소프라노의 가창력이 뛰어나고 목소리도 우렁차서 알토가 두 명이어도 좋았다. 친구와 나는 소프라노 양 옆에 나란히 서서 알토를 맡기로 했다. 예선을 통과한 후, 본선(방송 녹화) 당일이 되었다. 그런데 맙소사! 소프라노를 맡은 친구가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않아 발이 묶였다. 부랴부랴 급한 대로 두 명의 알토 중 한 명이 소프라노를 맡아야 했다. 운이 나쁘게도 내가 당첨되었다. 


 "부슬 비가 내~~ 리는 신~작로~에서~~"

 시작은 괜찮았다.

 "우~~ 산~을 가➚  쓰자, 하---아➚ 다---가-아- 말고~~"

 망했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두 번이나 고음 이탈을 했다. 그야말로 노래를 하다가 말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예선을 통과했을까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그날을 계기로 노래와 연을 끊었다. 나에게 노래란, 그저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코인 노래방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을 목청껏 질러대며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였다. 

 "정말! 난! 바! 보! 였어!!! 몰랐었어! 나를 사랑한----다 생각했! 어!"


 성가대 활동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첫 질문은, 발성은 어떻게 하는 거지? 였다. 노래는커녕, 소리를 내는 기본 방법부터 배워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악보에 그려진 음표의 정확한 음정과 박자와 리듬대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아름다운 소리를 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쉬어야 할 박자에 쉬고 호흡을 잘 분배하는 일은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었다. 곡을 표현하는 방법은 더 복잡했다. 클라이멕스를 향해 힘 있게 몰아가거나, 스타카토가 그려진 마디 위를 가볍게 뛰어가거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멜로디를 받쳐주는 것들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마치 움직이는 동작처럼 소리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뛰어가고 살금살금 걸었다.

 지금껏 나는 악보를 철저히 무시하며 살았구나. 숨 쉬고 싶은 대로 숨 쉬고,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고, 내 기분에 심취해 박자를 늘리고 건너뛰던 지난날들을 반성했다. 알면 알수록 어려웠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연습했다.


 보통의 경우, 성가대 연습은 각 파트별 연습부터 시작한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파트별로 연습이 끝난 후, 그제야 본격적인 합창 연습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튀어나온다. 4개 파트의 음들이 섞이기 시작하면, 파트별로 연습할 때는 잘 맞던 음정들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내 파트의 음정을 사수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소리를 냈다. 그것이 실수였다. 입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동시에 귀로 다른 파트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내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내 음정이 틀리지 않는지, 발성은 괜찮은지, 온통 내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 결과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연습과정을 휴대전화로 고스란히 녹음했다. 혼자 연습할 때 듣기 위함이었다. 전체 파트의 소리가 담기도록 녹음기의 위치도 적절히 고려했다.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녹음된 파일을 듣는데, 도저히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목소리 하나가 이상하게 튀고 있었다. 열심이긴 한데, 차라리 내지 않는 것이 합창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소리. 열심뿐인 소리. 전혀 아름답지 않은 소리. 내 목소리였다.


 두려웠다. 내 글이 열심뿐인 소리일까 봐.


 글을 쓰겠다 작정한 이래, 멋모르고 무작정 쓰던 3년,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던 1년, 딴짓을 하느라 글쓰기를 게을리하던 2년, 그 사이,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합평모임 12주, 그리고 다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까지, 6년 6개월이 지나고 있다. 아직 스스로 만족스러운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다. 결말까지 마무리 지은 이야기는 몇 편 되지 않고, 쓰다가 중간에 멈춰버린 이야기들이 대다수다. 시작만 던져놓은 문장들은 수두룩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쓰면 쓸수록, 나는 두려워진다. 내가 쓰는 글이 열심뿐인 소리일까 봐. 세상에 내놓는 소음에 불과할까 봐. 두려울수록 자주 머뭇거린다. 그러는 동안, 쓰이길 기다리던 글감들은 어디론가 꼭꼭 숨어버린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 없이, 그저 내 안에 있는 순도 100%의 것을 꺼내놓던 오래전 나의 글이 그립다. 엉망인 문장 속에도 반짝반짝 빛나고 통통 튀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던 학창 시절에 그저 목청껏 질러대던 소리가 그리워진다. 비록 소리는 엉망이었지만, 진심을 토해내듯 그토록 정성껏 한 음 한 음을 세상에 뱉어본 적이 또 언제였을까.


 오랜만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을 들어본다. 한 곡 반복재생. 반나절 동안 무한반복 중.

 온 힘을 다해 가사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입을 뻐끔거린다.


 아----무도 모르게, 아-아-아--- 무도 모르게, 설레었던 나의 마음을---------

 아름답던 기억들을 없애놓을 거야---- 밤새우며 그리워한 많은 날들을---

 미치도록 사랑스런 너의 모습을---- 어- 어어어어 어어어어 어어어어 엉!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말한다.

 "써놓은 이야기는 잠시 잊고, 곧바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해!"


 나는 그러기로 했다.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열심이라도 내자. 한동안 마음 내키는 대로 냅다 소리를 지르다 보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호흡을 조절하고 싶어질 때가 오겠지.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 지루하고 외로운 씨름을 하게 되겠지. 하루종일 이야기 숲을 헤매다 나와, 저녁으로 된장국을 끓이고 감자를 볶으면서도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을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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