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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Feb 15. 2024

어떠한 경우에도

: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합류지점에 진입하고서 잠시 후, 오토바이 한 대가 쌩-하고 내 앞으로 들어왔다. 헬멧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그' 또는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니 가운뎃손가락을 번쩍 들어 올려 보였다.

 응? 왜?


 조금 전 상황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복기한다.

 캄캄한 밤이었다. 왕복 6차선 도로에 진입하는 오르막길은 짧고 가팔랐다. 사이드 미러로 확인한 도로는 한산했고,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3차선으로 진입했다.

 난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오토바이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앞으로 끼어들더니 나를 향해 손가락 욕을 한다. 그런 오토바이를 환히 비추고 있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마치 어둠 속의 핀 조명 같아서, 나는 손가락의 의미 'Fuck you!(뻑큐! 일명, 엿 먹어라!)'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오토바이 입장에서는 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합류지점에서 안쪽 차선이 모두 비었음에도 굳이 가장자리 차선으로 달려야 했던 이유가 있었겠지. 진입하려는 차를 보면서도, 애써 차선을 바꾸는 번거로움이 싫었을 수 있지. 그것도 아니라면, '너 따위가 감히 내 앞에 끼어들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럴 수도 있지.

 진한 어둠을 덧칠한 헬멧 때문에 나는 당신을 볼 수 없고, 똑같이 어두웠을 자동차 앞 유리 때문에 당신도 나를 보지 못했을 테니, 혹 우리가 길을 걷다 만나더라도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런 사고가 없었으니, 각자 갈 길 갑시다.


 우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기특하다 여기고 있을 때, 옆에 타고 있던 조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했다. 참고로 조카는 '중2'다.

 "저 사람 왜 저래?!! 미쳤어??!"


 오래전의 일이다.

 "아빠, 나 운전 잘하지?"

 운전대를 잡은 지 2년, 스스로가 대견했던 막내딸이 아빠에게 인정을 요구했다.

 "운전은 잘한다고 자만하면 안 돼.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아빠는 막내딸이 의기양양해질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신 철저하게 '방어운전'을 가르쳤다.

 전방주시라 함은 앞차 꽁무니가 아닌 앞차의 앞차 그 앞차의 흐름까지 내다보는 것이고, 합류지점에서는 미리 차선을 안전한 쪽으로 변경해야 하고, 커브길, 교차로, 횡단보도, 휴게소나 졸음쉼터 진출입로 등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갑작스러운 변수에 대응하는 법을 비롯해 '농번기 국도 안전운행 지침'이라는 것을 만들법한 방어운전을 가르쳤다. 덕분에 아빠의 딸은 17년 동안 사고 없이 무사히 운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빠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방어운전만은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가끔, 몸소 보복운전을 보여주셨다. 보고 자란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했던가. 아빠를 보면서 내 안에 '성질'이 자랐다. 성질에도 숫자가 있다면 나이만큼, 몸무게만큼 늘지 않을까. 덕분에 도로 위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쫒고, 나를 쫒던 얼굴 모를 운전자들. 그랬다.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아버지의 딸로 자란 나는 보복운전을 종종 했더랬다. 어쩌면 보복운전에 있어서는 내가 아빠보다 한 수 위였을지도 모르겠다. 모두 부끄러운 지난 일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오토바이를 향해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여러 차례 깜빡였겠지. '왜 나한테 지랄이냐'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가능한 자동차 기능들을 모두 활용했으리라.


 운전대를 잡는 막내딸에게 엄마는 종종 말한다.

 "천천히 가. 성질부리지 말고."

 내 성질머리가, 엄마가 염려할 만큼 자라 버린 시절이 있었다. 성질을 부리고 나면 마음이 부끄러웠다. 통쾌하거나 속 시원할 법한 상황에서도 똥밭에 뒹군 기분이었다. 기분이 똥 같아지는 경험들이 여럿 쌓이면서 조금씩 성질이 숨을 죽였다. 살다 보니 철이 더 든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 TV 프로그램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걱정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나이를 먹고 겁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성질부리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든 요즘이었다.


 나보다 더 씩씩대는 중2 조카를 달랬다.

 오토바이 입장에서는 이모차를 못 봤을 수도 있지. 어쩌면 이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토바이가 훨씬 빨리 달려오고 있었을지도 몰라. 조카의 눈치를 살핀다. 납득하지 못한 눈치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있잖아, 갑자기 든 생각인데, 어떻게 달리는 오토바이를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뒤돌아볼 수 있지? 운전을 엄청 잘하나 봐. 좀 멋진데?"

 갑자기 조카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게? 존멋인데?!"

 나는 한 술 더 뜬다.

 "저 오토바이가 헬멧을 벗었는데, 70대 할아버지야! 헐! '엄지 척' 해주고 싶다."

 조카도 한 술 거든다.

 "저 사람 용기도 대단한데? 만약에 뒤차가 깡패들이었으면 화가 나서 쫓아가 보복할 수도 있잖아."

 "어...... 그렇네. 용감한 거네."


 우리는 상상했다. 무례하고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용감하고 멋있는 70대 할아버지로. 실제 오토바이 운전자가 20대 여자였으면 어떻고, 60대 할머니였으면 어떻고, 40대 남자였으면 어떤가.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하며 키득거리는 동안 오토바이는 저 멀리 사라졌다. 덕분에 불쾌한 상황을 웃어넘겼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나도, 오토바이 운전자도 무사히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어서 다행일 뿐이다.


 도로에서 성질부리던 시절의 나는 번데기 속에 꽁꽁 묶여 있는 중이다. 언젠가 탈피해 완전변태하는 날을 꿈꾼다. 운전대를 잡는 날이 늘어날수록, 자동차의 편리함만큼이나 그 위험성을 체감한다.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을 떠나, 어떠한 경우에도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감정이 누군가의 생명보다 중요할 순 없으니, 무엇이 우선인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모두가.



 [에필로그]

 그럼에도 여전히 참기 힘든 상황이 있다. 횡단보도 녹색신호가 꺼지기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 정말 혼내주고 싶다. 마음에서는 다음과 같은 행동지침을 내린다.

 1.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린다.

 2. 뒤차로 다가간다.

 3. 운전석 창문을 내리게 한다.

 4. 꿀밤을 사정없이 쥐어박는다.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서도 안되고, 옮길 수도 없는 나는, 다만 이런 상상을 한다.

 배우 마동석 외모로 변신한다. 뒤차에 다가간다. 운전자에게 묻는다. "뭐?! 왜?!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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